조달청이 지난해 10월 도입한 온라인 입찰 평가제도가 평가위원 확인시스템 미비로 ‘대리 평가’가 암암리 진행되는 등 졸속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조달청은 보완 장치 마련은커녕 실태 파악도 없이 내달부터 현행 1억원 미만 프로젝트에만 적용한 온라인 평가 범위를 2억1000만원 미만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29일 대학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조달청이 온라인 입찰 평가제도의 평가위원 확인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해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대학교수가 대학원생 등 비전문가에 평가 업무를 맡기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조달청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인 서울 A대학의 한 교수는 “온라인 평가방식은 평가위원이 온라인으로 입찰제안서를 검토하고 온라인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인데다 평가위원 확인 절차도 온라인으로 진행돼 마음만 먹으면 대리 평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교수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등에 맡기는 일이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또 다른 B교수도 “오프라인 평가는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평가하는 방식인 데 비해 온라인 평가는 일일이 평가자가 제안서를 읽고 꼼꼼히 비교해야 하는 방식이어서 5시간 이상 시간을 투자해야 할 정도로 번거롭다”며 “교수 대신 제자의 대리 평가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현 조달청 온라인평가는 평가위원을 확인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공인인증서에 의존한다. 비전문가들이 평가위원을 대신해 얼마든지 평가를 대행할 수 있다.
지방대학 교수의 온라인 평가 참여 기회가 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 주요 대학 교수들은 그동안 평가위원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 오프라인 평가에 바쁘다는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는데 최근 온라인 평가엔 부쩍 늘어났다.
충남지역 대학 C교수는 “온라인 평가 이전에는 한 달 평균 서너 번 평가위원으로 위촉됐으나, 과거 오프라인 평가를 꺼리던 서울지역 교수들이 온라인 평가에는 적극 참여해 요즘은 한 달에 한 번도 위촉되지 않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조달청 평가 참여 횟수는 연말 교수평가에서 사회봉사 활동부문 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조달청은 이처럼 온라인 평가가 졸속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태 파악은커녕 내달부터 온라인 평가 대상범위를 1억원 미만에서 2억1000만원 미만으로 오히려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온라인 평가는 현재 전체 평가 프로젝트 가운데 7%가량을 차지한다. 대상 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대리 평가’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조달청 관계자는 “현 시스템에서 대리 평가를 막는 것은 평가위원이 있는 곳으로 직접 직원을 파견하는 방법 말고 평가위원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원격 영상회의시스템 등을 도입해 평가 위원이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대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