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던 시절 많은 애환이 담겨 있는 것이 도시락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락이라는 용어가 익숙해지기까지는 나름대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는 도시락보다는 ‘벤또’라는 일본어가 널리 사용됐으며 고등학생일 무렵 제대로 된 용어의 사용을 위해서 도시락으로 바꿔 쓰게 했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최근 저작권 침해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다양한 저작권 관련 사건이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회자되고 있다. 나도 관련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하다 보니 다양한 저작권 산업 분야의 종사자를 만나고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접하면서 한 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저작권 산업 전반에 걸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판권(版權)’이라는 용어다. 왜 우리나라에서 판권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유래를 살펴보면 반드시 고쳐야 할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작권위원회에서 발간한 저작권100을 살펴보면 판권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카피라이트(copyright)’가 일본에 도입되면서 만들어졌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1834∼1901)가 1866년부터 1870년까지 3부작으로 저술한 ‘서양사정(西洋事情)’에서 ‘장판의 면허’라고 번역했으나 이후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 1873년에 ‘출판의 특권’이라고 번역한 다음부터 이를 줄여 판권이라고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일본은 1887년에 판권조례가 제정됐고 1893년에는 판권조례를 판권법으로 변경했으며, 1899년에는 저작권법으로 바꾸면서 판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 우리나라는 1908년 일본 저작권법을 들여와 사용했는데 그 당시 이미 일본에서는 카피라이트를 저작권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100년도 넘은 시절에 사용됐던 판권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판권이라는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영화판권, 부가판권, 도서판권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아직도 쓰이고 있는 판권이라는 용어를 하루속히 저작권으로 바꾸어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간혹 ‘판권’이라는 용어가 출판권을 줄인 표현으로 착각하는 사례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57조(출판권의 설정)에서 ‘저작물을 인쇄 그 밖에 유사한 방법으로 문서 또는 도화로 발행하고자 하는 자에 대하여 이를 출판할 권리(이하 “출판권”이라 한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출판권과 판권은 전혀 다른 개념이며 저작권의 의미로 사용했던 판권은 출판권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1999년 출판문화 4월호의 신각철 교수 기고에서도 판권이라는 용어는 법률용어로서의 효력이 없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글이 있었다. 벌써 10년 전의 글이었음에도 아직까지 판권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저작권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올바른 저작권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관계자들이 올바른 저작권 용어 사용에도 꾸준히 노력해 ‘판권’이라는 용어가 ‘과거의 흔적’쯤으로 여겨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김종원 상명대학교 저작권보호학과 교수 jwkim@s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