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포럼] 남북협력, 새 판을 짜자

[통일포럼] 남북협력, 새 판을 짜자

 남북과학기술 협력과제를 한다면서 생경해 보이는 북한 학술자료를 가지고 연구하고 북한 원전자료를 구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어린 아들이 내게 심각하게 말했다. “아빠는 통일되면 할 일이 없겠네요?” 그때 했던 답변은 “내가 할 일이 없어지더라도 통일이 되는 게 좋은 거지”였다. 어렸던 그 아들이 커서 이제 군복무를 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건만 그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랫동안 남북협력과제를 수행해 오면서 이른바 ‘탈북’을 구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여기서의 탈북은 남북협력과제나 사업을 하던 사람이 더 이상 하지 않은 상태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북한을 알고 북한 사람을 접하게 되면서 그들을 좀 더 알고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내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다 더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협력 업무를 계속해오면서 나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한국의 남북협력 관계자들이 북한 당국에 나쁜 인상만 남고 심지어 진절머리를 낸다는 것이다.

 먼저 남북협력으로는 과제나 사업의 성과를 내기가 참 어렵다. 정해진 기간 안에 과제의 성과를 내야 하니 우리가 오히려 속이 타고 사정을 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일도 생기니 이런 구조로는 진정한 협력이 될 수 없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연구 열정을 버리지 않고 순박하다고까지 표현될 과학자도 있었지만 북한의 당사자들, 대남 조직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의 순수한 의도를 비웃기나 하는 듯했다. 글로벌 에티켓을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동족 간의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몰염치로 인간적 거북스러움을 더했던 경험도 있었다.

 진정한 남북의 원활한 교류 및 협력은 물량 면에서 엄청난 식량이나 에너지를 지원하고, 수적으로 많은 사람의 왕래하는 외적 상태와는 또 다른 측면이다. 상대방과 함께하고 충분히 배려하는 태도가 있을 때 진정한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0년간 한국정부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우려하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사태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반이성적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경색 국면의 남북 상황을 볼 때 지금 당장의 협력이 없다는 게 우려스러운 게 아니라 과거의 협력이 아무런 성과나 효과로 나타나지 않음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협력의 기본 틀이 크게 어긋나 있는 현재의 긴장 국면이 늘 이런 상태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도 이를 타개할 대안의 화해나 협력 방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상호협력의 시기는 분명히 다시 온다. 그때에 우리는 남북협력의 판을 새롭게 하는 구도를 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은 되돌아보고 고민하며 바꿀 새 판의 모양을 그리는 시기가 돼야 한다.

 먼저 종전과 같은 방식의 교류나 협력은 아니라고 남북이 모두 먼저 선언해야 한다. 둘째, 결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상호주의는 아닐지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공존공영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선행해야 할 일들을 집중하고, 개인이나 특정그룹의 이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넷째, 정치적 의도나 입장을 앞세운 협력은 지양해야 한다. 완전 배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선되거나 상황을 좌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기본에서 재출발하며 절박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임할 때 통일의 사명을 이루는 판을 바꾸는 협력이 될 것이다. 긴 겨울 뒤 시샘의 추위 가운데서도 만산에 꽃이 피듯 남북 관계에서도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꽃이 만개하기를 기대해 본다.

 최현규 KISTI 미래지식연구팀장 hkchoi@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