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임대료가 비싼 실리콘밸리 샌드힐로드에 3일(현지시각) 또 하나의 신축 주상복합 건물이 문을 연다. 스탠퍼드대학이 2억달러를 투입해 설립한 이 단지에는 700평 규모의 사무실 건물 4개와 호화 호텔 등이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입주를 앞둔 이 곳의 분위기는 다소 썰렁하다. 스티브 엘리엇 스탠퍼드부동산 임원은 “사무실 임대률이 낮고 빌딩 중 한 곳은 아예 임대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실리콘밸리의 돈줄을 틀어쥔 벤처캐피털(VC) 기업들이 집결한 샌드힐의 부동산 현황을 통해 불황의 심각성을 재확인했다.
◇빈 집 늘어나는 VC의 요람=듬성듬성한 나무들 사이로 2층짜리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샌드힐에는 ‘클라이너퍼킨스코필드&바이어스(KPCB)’나 ‘세콰이어캐피털’처럼 유명한 VC들이 모여 있다.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부동산 경기는 웬만한 외풍에는 끄덕없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그만큼 이름값을 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샌드힐의 지난해 월 평균 임대료는 평방피트당(0.028평) 12.48달러로 2007년 11.97달러보다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코니쉬&캐리커머셜에 따르면 이 지역 사무실의 공실률은 2007년 4.5%에서 지난해 말 6.6%로 증가했다. 지난 2005년 닷컴 붕괴 회복기 이후 공실률이 6%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임대’ 간판 곳곳에=이미 VC들이 임대한 사무실을 ‘재임대(sublease)’한다는 광고가 심심찮게 내걸린 점도 달라진 풍경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부동산 전문 조사업체인 레이스에 따르면 이곳을 떠나는 VC와 사모펀드가 늘어나면서 지난해에 비해 샌드힐의 재임대율은 7배나 뛰었다. 건물 가치도 2007년에 비해 30%나 떨어졌다.
온셋벤처스 파트너인 테리 옵덴딕은 “지난해 월 임대료를 평방피트당 13달러로 갱신했지만 올해 평방피트당 10달러짜리 건물로 이사를 했다”며 “샌드힐의 벤처캐피털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실리콘밸리 사무실의 문을 닫은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역시 평방피트당 11달러에 사무실 재임대 간판을 내건 상태다. ING클라리온이 지난 2006년 사들인 이 건물은 당시 매입 가격이 평방피트당 981달러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실리콘밸리 최후의 보루마저=이같은 변화는 이곳의 주인인 VC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사정이 최악이기 때문이다.
미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 침체와 투자 위축으로 미국의 벤처캐피털 투자는 2007년보다 21.4% 줄어든 총 280억달러에 머물렀다.
지난해 4분기 투자는 1년 전보다 무려 70% 가량 폭락했다. 벤처캐피털 지원을 받은 신규 업체 중 단 6곳만이 기업공개(IPO)를 단행, 197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문제는 올해도 이같은 보수적인 투자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제기된다는 것이다.
벤처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리더벤처스는 최근 샌드힐의 사무실을 두 배로 확장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 회사 패트릭 고든 이사는 “샌드힐의 사무실이 비어가는 상황에서도 사무실을 옮기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확장 문제는 재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