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毒을 藥으로 바꾸자] (2부-7)소통의 중심

 경기도 평택에 사는 이재현씨(23) 가족은 인근에 소문이 날 정도로 화목함을 자랑한다. 특히 부모와 이재현씨의 친밀함은 각별하다. 우리 시대 20대 청년과 50대 부모 사이에 공통된 대화의 소재를 찾기 힘들지만 이씨 가족은 ‘수다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 그 매개체는 바로 게임이다.

 ◇소통의 벽에서 매개체로=이재현씨 가족은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을 한다. 처음엔 이씨 혼자 즐겼다. 50대 부모가 온라인게임을 알 리가 없었다. 장벽은 아버지가 먼저 깼다. 뒤 이어 어머니도 동참했다. 부모와 아들이 온라인게임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다.

 이재현씨 아버지는 “자식들이 커가면서 대화가 줄어들어 맘이 편치 않았다”며 “아들이 재미있게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하면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식사할 때처럼 가족이 모이면 공통의 화제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며 “게임이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고 자랑했다.

 게임은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장본인으로 인식돼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해 부모는 물론이고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게임이 갖는 강력한 집중도 때문이다.

 이미 게임은 가장 대중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게임 자체를 부정하는 자세는 어리석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게임이 갖는 집중도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게임이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서울 서정초등학교 변재만 교사는 “게임을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즐기면 매우 효과적인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며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로부터 게임을 멀어지게 만들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단 30분이라도 함께 게임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면 가족의 단절을 치유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성 간접체험의 장=게임은 가족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매개체일 뿐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과도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공간이다. 이 안에서 게임 이용자들은 간접적으로 다양한 사회성 체험을 한다. 특히 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은 가상세계의 소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다수가 MMORPG 내에는 폭력적 사냥과 전투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MMORPG 내에는 각종 재화의 생산과 소비 및 거래가 있다. 또 공동체 형성 과정이 있다. 이를 통해 MMORPG 이용자들은 인간관계 형성을 체험한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MMORPG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서사적 깊이와 사상적 감동이 존재한다”며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MMORPG 내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선과 악의 대립도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성 체험에는 많은 기회비용이 필요하다. 반면에 게임 내에서는 누구나 공동체를 이루거나 국가 간 교역이 가능하다. 과거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악덕 영주를 몰아내는 민중봉기도 체험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04년 5월 ‘리니지2’에서 일어난 ‘바츠해방전쟁’이다. 이는 힘이 센 몇몇 게이머들이 동맹을 맺고 게임 속에서 막대한 이윤을 독점하자 상대적으로 약한 다수의 게이머들이 이에 저항한 투쟁이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게임의 법칙과 달리 결과는 약자들의 승리였다. 수천 명의 약자가 모여 결국 소수의 절대 강자를 무너뜨린 바츠해방전쟁은 MMORPG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상체험의 백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