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회장은 최근 “경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 소니가 ‘굴욕’ 수준의 실적 부진에 허덕이면서 대대적인 변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소니가 선보인 신형 디지털 캠코더 ‘웨비’의 사례를 통해 스트링어 회장의 이같은 결심이 구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웨비HD’는 유튜브 등에 간단한 동영상 클립을 올리는 데 적합한 보급형 디지털 캠코더로 가격도 200달러 이하다. 그동안 최고급 기술을 적용한 고가의 고급 제품을 고집해온 소니로서는 심상치 않은 변화다. 이는 전세계적인 불황과 엔고의 여파로 안정적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소니가 선택한 생존 방식으로 풀이된다.
지난 1월 말 소니는 2008 회계연도 결산 전망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2600억엔(약 3조9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14년만에 처음으로 연간 적자가 예상된다.
웨비는 소니 공장이 아닌 중국 제조 협력사에서 만들어진다. 제품 개발도 일본 엔지니어가 아닌 미국 마케팅팀에서 담당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웨비는 ‘폼나는 기기’에 열광하는 일본 소비자가 아닌 ‘실용적이고 값싼’ 제품에 목말라 하는 미국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퓨어디지털테크놀로지가 출시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포켓 사이즈 캠코더 ‘플립’과 정면 대결한다는 목표다. 최근 시스코시스템스는 퓨어디지털의 성장세에 주목해 이 회사를 5억9000만달러에 샀다.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저가형 캠코더 시장은 1∼2시간 분량의 동영상만 저장할 수 있지만 불황 덕분(?)에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된 총 2200만대의 캠코더 중 절반이 이같은 보급형 제품이다. 2006년에 비해 22%나 성장한 수치다.
소니는 또 ‘캠코더’ 색상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검정색·은색 등의 컬러를 과감히 포기하고 웨비에 ‘보라색’과 ‘오렌지’ 색상을 입혔다.
이 역시 미국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한 것으로, 플립이 다채로운 색상은 물론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의 외관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선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니의 ‘웨비’가 ‘플립’보다 3년이나 늦게 시장에 나온 데다 애플 매킨토시 PC와 호환되지 않는 등 개선점이 남아 있어 스트링어 회장의 이번 실험이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라고 예측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