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컴퓨터를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컴퓨터는 답만 줄 뿐이기 때문이다. 답이 관건이 아니라 질문이 생각을 키운다. 피터 드러커는 올바른 질문보다 답을 찾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실수가 발생한다고 했다.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의 질이 답의 질을 결정한다. 바른 질문이 없으면 바른 해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답변을 구상할지언정, 좋은 질문은 잘 못한다. 느낌표는 남발하지만 물음표는 감춰둔다. 몰라도 아는 척 창피해서 못 묻고, 부정적인 답변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못 묻는다.
아이들은 허무맹랑한 것부터 철학적인 것까지 겁 없이 잘 묻는다. ‘왜 별이 반짝이냐’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가냐’는 것까지 무엇이든 물어본다. 반면에 점점 나이가 들면 질문을 삼켜버린다. ‘그것도 모르는 바보’ 취급을 받을까봐서다. ‘원래 그런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 동안 답을 주는 어른의 모습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질문마저 거추장스럽다.
바람직한 질문은 깊은 사고와 성찰을 유발한다. 질문은 돌덩어리 같은 침묵도 깨고, 얼음조각 같던 마음도 연다. 아무리 명의일지라도 질문 없이 처방하는 병원은 불안하다. 아무리 자신만만해도 질문 없이 머리 스타일을 매만지는 미용실은 불쾌하다. 멋진 디자인도 나에게 맞으려면 내 치수를 물어야 하고, 멋진 생각도 상대에게 통하려면 상대와 맞는지 물어야 한다. 칼리 피오리나는 질문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경청의 최상위 버전이 질문이다. 정말 심각한 일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를 때 생긴다.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모를 때는 막막하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 질문할 수 있고 알고 싶은 것이 있어야 질문한다. 질문은 삶에서, 앎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