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세계 일류화를 위해] (1)프롤로그

 중간 산업재인 부품소재 산업은 경제균형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완제품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결정, 경제 전체의 수출성과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터치폰 등 새로운 완제품의 출시를 유발해 시장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또 생산 및 고용이 전체 제조업의 40% 이상을 차지, 대한민국 산업의 풀뿌리다. 고용 성장과 산업 경쟁력 강화란 과제는 부품소재 기술력 수준에 달려 있다. 부품소재 발전이 없다면 자립 경제발전도 불가능하다. 이에 전자신문은 부품소재 산업의 중요성과 세계 일류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대안을 이번 시리즈에서 모색해본다. 디스플레이·휴대폰·반도체·자동차 등 현재 주력 산업은 물론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인 녹색산업에서 열악한 부품소재 경쟁력 현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미래 부품소재 기술들을 짚어본다. 특히 개발로 승부할 분야와 내재화(외산기술의 토착화)로 이어갈 분야에 정확한 선을 그어 향후 발전방향에 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경제는 목줄로 묶인 양쯔강의 가마우지 같다. 목줄(부품산업)이 묶여 생선(완제품)을 삼켜도 곧바로 주인(일본)에게 바치는 구조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 박사가 1989년 ’한국의 붕괴’란 책에서 지적한 말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에 힘입어 달러를 엄청나게 벌어들였다. 하지만 수출 완제품의 핵심 부품 대부분을 일본산에 의존한 한국은 고생만 실컷 할 뿐 열매는 일본이 챙긴다는 한국 경제 현실을 그는 꼬집었다.

 10년 뒤인 1999년. 또 다른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한국경제를 다음과 같이 매섭게 진단했다. “무역수지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부품 산업이다. 그런데 한국은 부품 산업을 육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까지 환율 하나에 국가 전체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는 외부 의존형 국가경제를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부품 산업이 일천한 한국 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일본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뼈아픈 지적은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2009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1999년 8월 부품소재 산업 육성 전략 수립에 나선 이후 부품산업을 지원한 덕분에 부품 대일 수입의존도는 낮아졌다. 지식경제부 부품소재 수출입현황(2009년 3월) 자료에 따르면 부품 수입 증가율은 1999년 45.3%에서 2008년 2.3%으로 크게 낮아졌다.

 대일 수입의존도가 완화 추세에 있지만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일부 기업은 과장해서 ‘천형(天刑)’에 비유할 정도다. 대일 부품·소재 수입 의존도를 따져보면 1999년 27.4에서 2008년 23.3으로 소폭 줄었을 뿐이다. 휴대폰·디스플레이·반도체 등의 우리나라 주력 완제품의 수출이 활기를 띠면 띨수록 역으로 일본 부품소재 수입을 유발하는 등의 문제가 늘상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엔고 급등으로 한국산 부품소재를 찾는 일본 기업이 부쩍 늘어났다.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지식경제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 공동 개최한 ‘한일 부품소재 조달·공급전시회’에선 3억달러에 육박하는 수출 계약과 공급 약속을 받아냈다. 미쓰비시전기 조달그룹 타다오 서 수석 매니저는 “한국은 거리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한국과 일본 기업이 디지털·IT기기산업 분야에서 제품 특성이나 품질면에서 많이 닮아 있는 점도 주요 구매 대상국으로 손꼽히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부품산업에 투자하는 일본 기업도 늘어났다. 58개 일본 유력 부품소재 기업이 한꺼번에 찾아들면서 구미, 포항, 부산, 진해, 익산에 조성 중인 일본 부품소재전용공단에 일본에서만 23건, 5억5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자동차, 선박 등 5대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완제품 제조라인과 판매망, 해외 제품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를 우리 부품소재산업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힘의 원천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1년에 200억∼300억달러 적자인데, 과학기술이 이런 (부품소재) 무역역조를 개선하고 적자폭을 줄이는데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몇년 뒤에 또다시 일본인이 제기하는 가마우지론을 듣게 될 것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