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IT 강국이다.’ 이는 반만 맞는 헛구호다.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며 활용 측면에서 1등이라는 것은 ‘속빈 강정’이다. 고환율에 휘청거리고 세계 경기 여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허약 체질인 ‘말뿐인 1등’일 뿐이다. IT 인프라는 확실히 앞섰지만 이를 떠받칠 튼튼한 기둥은 적다.
경제는 기초체력이 중요하다. 기초체력은 제조업이다. 서비스산업이 고부가가치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산업이 고부가가치가 되려면 제조업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이다. 제조업이 빈약한 싱가포르나 홍콩, 아이슬란드는 이번 세계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제조업 없는 국가 경제는 그만큼 외풍에 허약하고 펀더멘털이 약하다.
한국의 IT 역시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IT 제조업도 있지만 세트에 집중됐다. 가장 중요한 부품소재 산업은 뒷전이었다. 그 결과 40년 넘게 부품소재의 대일 무역역조는 해결되지 않았다. 말뿐인 IT는 미풍에도 흔들거렸다. 어려울 때 진가가 나온다고 했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가를 이번 경기침체가 보여주었다. 불황이건 호황이건 변치 않는 미국의 3M, 독일의 머크, 일본의 스미토모를 마냥 부러워 해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깝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정부의 부품·소재 육성의지가 뚜렷하며, 기업들의 개발의지도 충만하다. 여기에 ‘고환율’의 햇살도 비춰준다. 폐허에서 이룬 한국 경제의 기적이 부품소재 산업에서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때맞춰 삼성전기가 세계 최초로 초대용량 MLCC 부문에서 경쟁사보다 1년 이상 기술 우위를 확보한 제품을 선보인 것은 희소식이다. 이제 허약한 IT 강국이 아닌 진짜 ‘IT 강국’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