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91년 저서 ‘권력이동’에서 미래 사회에는 권력의 본질 변화와 함께 권력의 주체가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얼마 전 개최된 G20 정상회담은 권력이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세계 경제가 과거 선진경제대국 G7(G8) 정상회담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각화돼 있음을 의미하며 2010년 G20 의장국으로 선출된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경제의 주체가 될 정도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달 무역수지 흑자의 90%가 IT제품에 의한 것이라는 통계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IT라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이 실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CDMA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와 함께 활성화되기 시작한 모바일 IT산업은 확보된 기술과 인재에 의해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품질 및 이에 걸맞은 세계 선도기술, 다양한 서비스 개발로 세계 IT산업 분야의 리더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10년 이상 국가 경제의 훌륭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은 와이브로 기술의 최초 상용화로 이어지는 쾌거의 바탕이 됐으며 휴대폰 분야에서는 세계 2·3위 업체를 보유하는 힘이 됐다. 그러나 모바일 IT 분야 또한 시장을 주도하는 주체의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이동통신 시스템 시장은 에릭슨, 알카텔-루슨트, 노키아-지멘스, 모토로라, 노텔 등 메이저 업체가 시장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중국의 화웨이, ZTE가 3G, B3G 및 4G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업체들의 약진은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거대한 자국 시장에서의 품질·원가 경쟁력 확보, 저렴한 노동인력과 전 세계 화교 세력의 지원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특히 중국 정부는 10여년 동안 3G 사업 지연으로 자국 업체의 기술 선진화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 주고, 세계 곳곳의 경제협력 정책과 연계해 세계시장 진입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 주었다. 또 화웨이와 ZTE의 핵심 사업을 시스템과 단말로 특화하도록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원함으로써 시스템 시장에서 화웨이의 위상뿐만 아니라 단말 시장에서 ZTE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 2·4월에 있었던 MWC와 CTIA 전시회에서 확인된 이동통신의 화두는 4G 이동통신 상용화였으며, 이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여러 SW 제품과 기존 사업자들의 월드 가든(walled garden)에 도전하는 응용단말 제품이 경쟁적으로 전시됐다. 4G 상용화는 글로벌 표준이 결정돼 상용 서비스를 진행 중인 모바일 와이맥스와 표준화가 완성단계에 있는 LTE 진영 간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고 있으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클리어와이어의 와이맥스 서비스 계획과 버라이즌의 LTE 투자 계획은 시스템 업체 선정이 완료돼 몇몇 메이저 업체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사업자들의 3G 네트워크 투자가 도심지역의 업그레이드 시장을 제외하고는 마무리 단계며 사업자들의 3G 사업 활성화 계획뿐 아니라 4G 주파수 할당 및 관련법 개정이 시행돼야 하기 때문에, 4G 네트워크 투자는 일정 예측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국내 시스템 장비 업체들의 사업 전망은 향후 수년간 매우 불투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장비업체는 규모가 작고 일정 예측이 어려워도 국내시장에서의 레퍼런스 확보를 거쳐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장비 개발을 위한 선행 투자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인 것이다.
이동통신에서 시스템 기술은 이동통신 기술의 시작이자 끝이며, 전 세계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나라가 10개국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전자·통신 분야의 모든 기술이 집약돼 있는 진정한 국가산업 경쟁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차세대 이동통신 시스템 사업 분야를 향후 10년 이상 지속 가능한 국가 경제성장동력으로 유지하기 위한 총체적 활성화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과제 해결 노력과 병행해 정부와 기업들이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해외 메이저 업체들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각자의 역할에 상호 지원을 강화하고 서로의 능력을 시너지 효과로 승화시켜 국내 산업 경기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 진정한 IT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마당인 것이다.
이재령 LG 노텔 대표/jllee1@lg-nor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