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우 미국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는 ‘브뤼셀의 프라이버시 당국자가 날개를 퍼덕이면, 샌프란시스코에 허리케인이 올 수 있는가’라는, 프라이버시 정책에 나비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질문에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1990년대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가 주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프라이버시를 가장 잘 보호한다는 이유로 유럽의 규제가 전 세계 프라이버시 규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는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규제로,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의무를 사기업에 전가하는 형태다. 이는 해당 개인정보 공개를 원치 않는 시민의 프라이버시권 침해와 더불어 이러한 절차와 관련된 비즈니스 유지에 불필요한 비용을 전적으로 사적 영역에 떠넘긴다는 큰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와 관련,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다. 유튜브의 비즈니스 모델에 거스르는 실명제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구글코리아는 한국 국가 세팅에서는 업로드가 되는 기능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처음에는 이러한 조치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준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다가 청와대가 한국 국가 세팅에서 유튜브에 글을 올릴 수 없는 딜레마 등에 처하게 되자 “구글의 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겠다” “중국에서는 중국법을 지키면서 한국에서는 왜 지키지 않는 것이냐”는 등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이런 대응을 보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유튜브 외에 다른 글로벌 사이트도 우리나라 사람이 글을 올리려면 갑작스레 인터넷 실명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일까” “해외 글로벌 사이트 중 인터넷 실명제를 지키지 않는 사이트는 아예 차단하겠다는 것일까” 등등.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인터넷 실명제 의무화 규제는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이 될 수도 있는 우리의 인터넷 기업에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경쟁력 제고에 불필요한 리스크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은 왜일까.
물론 팀 우 교수 지적대로 유럽이 프라이버시를 가장 잘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인터넷 실명제가 정말 좋은 제도며 이것이 주는 이점이 더 크다면 많은 나라의 기업이 채택하거나 이를 자사의 홍보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유튜브 사례를 접하면서 국외에서는 인터넷 실명제와 해당 정책당국이 웃음거리만 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네티즌조차 이런 상황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들만 고려한다면, 우리의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계속 존치하고자 하는 주장에는 아름다운 나비가 아닌 동굴 속의 박쥐처럼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없는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없는 규제의 강요는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더욱 기형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미국의 정보보호 전문가인 조지 솔로브 교수는, 미국의 SSN(Social Security Number,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한 식별번호라는 점에서 비슷하다)을 사기업이 임의로 전자상거래 등에 사용하는 것조차도 식감한 개인정보침해 사건들의 시작이라고까지 지적했을 정도다. 나는 이번 구글코리아의 유튜브에 대한 조치가 한국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폐지를 유도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그래서 국가에 의한 국민식별번호(예, 주민등록번호, 아이핀 제도) 사용이 더 이상 민간분야에서 의무화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 squ24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