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전문가일수록 인터넷 이용에 신중하다고 한다.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과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은 이용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활동이 가능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누구와도 공유하는 기술적 특성 때문에 항상 보안 문제에 노출돼 있다.
인터넷 활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용자 수가 많아지고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보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정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인터넷에 침투해 중요한 정보를 빼가거나 파괴하려는 시도가 치열해지고 있다. 그에 따른 피해가 치명적일 수 있는 현실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인터넷은 개인·국가·기업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전자정부·디지털 기회지수 세계1위, 만 6세 이상 인터넷 이용률 76.3% 등의 수치는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임을 말해준다. 사적·공적 영역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런 사실에 세계는 주목하고 우리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사이버 안전과 관련된 수치는 인터넷 강국의 위상에 못 미쳐 아쉽다.
2007년도 인터넷 산업 시장 규모는 24조원이 넘는 데 비해 정보보호 산업 규모는 7000억원 정도로 인터넷 산업의 3%에도 못 미친다. 증가추세도 인터넷 산업이 2006년 대비 4.1% 증가한 데 비해 정보보호 산업은 1.4% 증가에 그쳤다. 정부의 IT 예산 대비 정보보호 예산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09년 5.5%에 이른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미국은 9.7%로 1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민간부문은 더욱 아쉽다. 2006년 IT 총투자액의 1% 미만을 정보보호에 투자한 기업이 78% 이상인 데 비해 10% 이상을 투자한 기업은 0.8%에 불과하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보호 투자비율이 1% 미만인 기업은 10%대에 불과하다. 미국은 절반 가까운 기업이 IT 투자액의 1∼5%를 정보보호에 투자했고 10% 이상을 투자한 기업이 9%다. 영국은 2007년에 IT 투자액의 5∼10%를 정보보호에 투자한 기업이 24%인 점은 우리 기업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산업규모, 정부 및 민간 부문의 관련 예산과 투자 현황을 선진국과 비교해 보니 우리의 정보보호 현주소는 세계 제일의 인프라를 자랑하는 인터넷 강국의 모습으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2003년 1·25 인터넷대란 때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피해국이 됐던 경험은 사이버 보안이 인터넷 강국의 중요한 조건임은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다.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약 15조5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중 우리나라 피해액이 약 1조5000억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약 10%를 차지했다. 1·25대란 이후 지난 5년간 정부와 민간의 각종 정보보호 대책과 예방 노력의 결과 정보보호 수준이 개선됐고 그 경제적 피해손실 예방효과가 약 5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정보보호 문제는 더 이상 불요불급한 ‘비용’이 아니라 ‘투자’임을 입증한 셈이다. 초고속망 같은 인프라가 인터넷 이용의 편리성의 문제라면 정보보호 같은 사이버 안전의 문제는 인터넷의 신뢰 문제다.
‘신뢰’를 부와 성공을 창출하는 사회적 자본으로 규정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보화 사회성공 요인으로 신뢰를 강조했다. 신뢰 정도가 낮은 사회는 정보사회의 과실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그의 경고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인터넷 강국으로서 명실상부한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최고의 망과 더불어 신뢰라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경자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kaylee@kc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