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毒을 藥으로 바꾸자] (3부-1)미국

미국 전자부품 업체인 애로일렉트로닉스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신입 사원들을 뽑으면 본사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기업 문화부터 회사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역사, 그리고 속한 산업의 현황까지 애로일렉트로닉스에 관한 내용을 닷새 동안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할수록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기업 성장으로 직원들이 점점 글로벌 인재로 채워지면서 기존 교육 방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53개국에 있는 1만1000여명의 직원을 일괄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엘 카달도 애로일렉트로닉스 조직효율화 부장은 “본사 오리엔테이션이 교육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언어, 지역적 문제 등의 이유로 북미 직원에게만 효과가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대안이 필요했다. 비용도 크게 들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직원을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을 새롭게 발굴해야 했다. 오랜 연구 끝에 결론이 나왔다. 바로 게임이었다. 게임을 이용해 세계 직원을 교육한다는 것이 그들이 찾은 답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는 만점이었다. 게임은 퀴즈쇼 형태를 빌린 단순한 모양새를 띠었지만 다양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전 세계 직원이 게임에 참여했고 또 자기주도적인 학습 문화도 생겨났다.

카달도 부장은 “게임 개발비는 기존 오리엔테이션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었지만 효과는 기존 방식의 몇 배였다”고 설명했다. 처음 신입사원만 대상으로 하던 게임교육은 그 성공적인 평가에 따라 지금은 관리직까지 확대됐다.

기능성 게임은 우리나라에서는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매우 인기다. 군사용·의료용으로만 쓰이는 초기 단계를 넘어 애로일렉트로닉스처럼 기업도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믿고 활용하는 수준까지 왔다. 미국의 경영 전문지인 HR매거진은 기획기사를 통해 “인재양성을 위한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게임이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게임을 응용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IBM이 있다. IBM이 만든 ‘이노베이트(Innov8)’란 게임은 기업 내 IT부문과 비즈니스 리더 간 이해의 차이를 묻는 양방향 3D교육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기술과 비즈니스 전략이 기업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가상 게임 속에서 체험한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장애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판단, 기술을 도입하기 이전에 대응책 도모를 학습하는 것이다.

이노베이트는 당초 △비즈니스 프로세스 관리 △기업 전략·운영 △IT관리 등의 강의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됐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로세스라는 큰 틀을 이해하고 교육생의 학습효과와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100여개의 대학에서 정규 교과과정에 사용되고 있다.

게임이 미국 내 기업에 각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의 훌륭한 교육 도구가 될 것이라는 경험과 기대감 때문이다. 기능성 게임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즐겁게 열중하게 한다’는 점이 꼽힌다. 게임에 익숙한 세대가 열광할 만한 재미를 바탕으로 유익한 내용을 자연스레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태영 남가주대학(USC) 인터랙티브 미디어학과 연구원은 “정부나 기관에서 공익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게임을 빼놓는 적이 없다”며 “게임의 중독성이나 유해성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면을 찾아 활용하려는 노력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류 연구원은 현재 남가주대학에서 미국 국토보안국 지원으로 경찰 및 소방대원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 게임을 만들고 있다.

게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산업의 태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능성 게임의 가능성을 주목한 기업들이 적극적인 개발에 나서면서 현재 미국에서는 약 80개 업체가 시장 선점을 위해 뛰고 있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지 CMP미디어는 2005년 5000만달러인 미국 내 기능성 게임시장 규모가 2010년에는 3억60000만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기업이나 정부 등은 어떻게 게임의 가능성을 깨닫고 적극적인 도입에 나서는 것일까. 학계의 활발한 연구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유수한 대학은 전문 교과과정이나 연구소 등을 만들어 일찍부터 미래에 대비했다. 그중에서도 카네기멜론·USC·조지아공대는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학교로 꼽히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저변을 바탕으로 미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우리나라 돈으로 약 23억원을 들여 시작한 연구는 이런 측면에서 신선하다.

뉴욕대학교와 함께 ‘헤일로 3’ ‘기어스오브워’ 같은 오락용 비디오 게임의 순기능을 파악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골자인데, MS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오락적으로도 즐겁고 교육적으로도 효과가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좋은’ 게임으로 평판도 얻고 돈도 벌겠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MS 조드 노드링어 게임연구총괄은 “가장 기초적인 부문부터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라면서 “비폭력적이면서 즐겁고 학습에도 도움을 주는 게임을 만들면 성공은 당연히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