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핵심 성장전략으로 선언한 가운데 ‘그린’이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녹색성장’은 환경을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의 성장을 의미하는 ‘지속가능 성장’이나 경제위기 극복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그린 뉴딜’보다 녹색산업 활성화를 통한 성장추구라는 측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정책의지를 담은 표현이다.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hot, flat, and crowded)’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전망한 것처럼 녹색산업이 무기산업, IT산업과 함께 미래의 3대 산업이 될 정도로 시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녹색성장이 본격 논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녹색성장’의 잠재력이 큰만큼 그에 부수되는 ‘그늘’에 대한 각오와 준비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탄소 혹은 탄소 중립 경제시스템으로의 전환은 거대한 경제시스템의 변화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인 혼란과 고통과 불편은 불가피하다. 그 과정은 개인과 기업 모두에 성공의 기회도, 낙오의 함정도 될 수 있다. 발 빠르게 변신하며 저탄소 경제시스템에서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있겠지만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다가 경쟁에서 뒤처져 낙오하는 기업도 상당수 나타날 수 있다.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의 자동차 빅3 포드·GM·크라이슬러는 에너지 전환 혹은 에너지 혁명이라는 대변혁기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한 결과 가장 먼저 어려움에 처한 사례다. 영국의 에너지, 환경, 금융 전문가들로 구성된 ‘그린뉴딜 그룹’은 지난해 7월, 영국정부에 저탄소 경제시스템 전환에 필요한 정책들을 제안하며 에너지효율 극대화를 통한 저탄소 경제시스템 구축, 환경재건프로그램을 실행할 그린 노동력(carbon army) 양성 등과 함께 에너지 가격을 높게 책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화석에너지 가격이 낮으면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보급 등 저탄소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의 투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을 높이면 당장 개인, 기업, 정부 등 모두에 고통스럽다. 가계는 교통비, 난방비 외에도 전반적인 물가인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고, 기업은 생산비용 증가로 고통을 받는다. 정부와 정책 담당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일시적인 경기침체로 경제정책 수립에 많은 애로를 겪을 것이다. 생활의 불편도 뒤따를 것이다. 큰 차 대신 연료효율이 높은 작은 차나 하이브리드차를 타야 하고,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이용을 늘려야 할 것이다. 전기소비가 적은 가전제품을 찾아서 이용해야 하며, 새 제품보다 재활용품을 선호하는 문화에도 적응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인기 없는 고유가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가급적 에너지 가격 추가 인상 없이 녹색성장을 추진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에너지가격 인상을 외면한다면 국가경제 전체가 녹색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에서 훨씬 앞서 있는 일본이나 EU국가들도 대부분 에너지에 높은 유류세, 탄소세 등을 부과해 기름값, 전기요금 등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싸다.
녹색성장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치권, 오피니언 리더들이 장밋빛 환상만 심어줄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다른 모습의 진실을 말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작은 고통과 불편은 감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모두가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지지해야만 녹색성장은 성공할 수 있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president@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