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 벌금 부과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인텔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결국 유럽연합(EU)이 ‘벌금 폭탄’을 부과했다. 벌금 규모는 10.6억유로로, 지난해 인텔 매출의 4%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인텔의 시장 지배력에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겠지만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반독점 행위 규제를 강화하는 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사상 최고 벌금 왜?=EU가 미국 대형 기업에 대해 이처럼 엄청난 벌금을 부과한 것은 이례적이다. 역대 벌금 부과 순위만 봐도 10위 권내 포함된 미국 기업은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 단 두 곳이다.
전문가들은 EC가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인텔의 리베이트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했다고 판단,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했다고 풀이했다.
13일(현지시각) 공개된 판결문에 따르면 인텔은 PC제조업체에게 자사 칩을 대규모로 구매하거나 경쟁사인 AMD 칩 기반 제품 출시를 지연시키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닐리 크뢰스 EC 공정거래 집행위원장은 “인텔은 AMD의 시장 진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함으로써 수백만명의 유럽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전문 매체인 EE타임스는 EC가 장기적으로 인텔의 리베이트 행위를 근절시킴으로써 AMD칩 기반 제품이 다양해져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인텔 시장 지배력 여전할 것=하지만 메가톤급 제재에도 불구하고 주요 외신들은 인텔이 이번 벌금 부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거나 시장 판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인텔의 전세계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은 약 80%에 달한다.
다만 AMD의 점유율 확대와 PC 시장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인사이트64의 나탄 브룩우드 애널리스트는 “이번 결정으로 지난 5∼6년간 시장 진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AMD가 해방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텔이 그동안 시장 입지를 다지기 위해 동원해온 ‘시장육성자금(MDF)’, 즉 리베이트와 칩이나 플랫폼 가격 인하,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 등을 축소할 경우 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EE타임스는 인텔이 아톰칩 기반의 9∼10인치 넷북 대신 차세대 초저전력코어(CULV) 기반의 12∼14인치 노트북PC 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텔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델이 유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카우프만 브로스의 쇼 우 애널리스트는 “EU의 이번 결정은 기업용 제품 부문에서 인텔 칩에 의존하고 있는 델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와 달리 HP는 인텔과 AMD칩을 공평하게 사용하고 있어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폭풍에 관심 집중=미국의 독점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등 ‘후폭풍’에도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부터 미공정거래위원회(FTC)는 인텔의 독점 행위에 대한 공식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지매이슨 대학의 조슈아 라이트 법학 조교수는 “FTC가 인텔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2주일 전에 비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판결에 대해 폴 오텔리니 인텔 CEO는 “EC는 불공정 거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하고 단지 구두 계약이 맺어졌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라며 “EC의 판결에 반박할 만한 증거를 다수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인텔은 항소를 제기할 예정이나 항소 판결까지는 2∼3년이 걸릴 수도 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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