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문제에 마치 큰 선심을 쓰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북한의 조국평화 통일위원회는 지난 9일, 대변인 담화에서 한국정부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우리를 공공연히 중상모독하고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조건에서 북·남 사이의 대화는 논의할 여지조차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의 제성호 인권대사가 미국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탈북자 정착촌 건설을 고려해야 한다는 발언과 최근 외교부 당국자가 미국을 방문해서 현대아산 직원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기 위한 의견을 나눈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21일, 북한이 제의한 개성공단 임금인상 및 토지사용료 조기징수 문제와 관련해 2차 개성 접촉을 준비하는 와중에 나온 반응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우선 개성에서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직원 문제 해결을 강하게 요구할 예정인데 이를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지난 8일 북한 외무성이 미국과의 대화 무용론을 언급한 데 이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억류된 사람들을 놓고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국 및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도 또한 내재돼 있는 듯하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개성 2차 접촉을 북한이 먼저 제의했다는 점이다. 지난달에 남북이 만난 이후 왜 답이 없는지 북한 측이 촉구를 해 온 것이다. 이는 북한이 일단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억류 인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비해 북한은 억류자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임금인상 등의 사안만을 다루는 것만으로 남북접촉을 이끌겠다는 속셈인 셈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화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인질을 볼모로 삼아서 대화를 안 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개성공단에서 어떤 형태로든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실무계층의 고민도 배어 나오고 있다. 마치 남쪽에서 개성공단을 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나올 것에 대한 실질적 우려가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 기관 간에 서로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외무성이나 군부, 심지어 조평통에 이르기까지 북한 기관들이 내는 목소리는 북한 지도부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북한 내에 이상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도 감지할 수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북한주민들과 체제를 지키기 위해 더욱 대외적으로 비타협적으로 돼 가고 있는 지도부 간에 불만의 불씨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탈북문제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북한지도부는 더 이상 대외적으로 비타협적인 자세만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 직원은 물론이고 미국인 기자들에 대한 억류를 풀고 한국 및 미국과의 대화에 나와야 한다. 이것이 오히려 체제를 지키는 데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지도부는 가능한 한 빨리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기 있는 코미디 코너 중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프로가 있었다. 서로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딴소리를 늘어놓다가 결국에는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다. 남북 간에도 이제는 대화가 필요하다. 특히 북한을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북한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동용승 SERI 연구전문위원/seridys@s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