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전봇대와 자전거

[ET칼럼] 전봇대와 자전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전봇대에 관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불공단 입주업체들이 5년 동안 치워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던 전봇대였다. 이 전봇대는 당선인의 한마디에 금세 사라졌다. 이후 전봇대는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탁상행정의 전형, 규제완화에 미온적인 보수행정의 상징이 됐다. 자연스레 전봇대 뽑기, 즉 규제개혁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이콘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봇대는 동시에 전시행정의 표본이기도 하다. 대불공단 전봇대는 매설돼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형 화물차가 다니는 데 불평이 없도록 한 발짝 밖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녹색성장의 본질은 변화나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단언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가야 하는 이치다. 그런데도 정부는 낡고 냄새나는 헌 부대에다 야심 차게 녹색성장이라는 술을 빚으려고 하고 있다.

 자전거가 대표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자전거는 녹색성장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MB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탄다. 주식시장에서는 모 자전거 업체가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자전거 타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탄소 배출의 주범인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탄다면 달구어지는 지구를 제법 식힐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 타기는 국민 모두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풀뿌리 녹색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만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전거 타기는 엄연히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존재한다. 자전거는 외양상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건너뛰는 또 하나의 전봇대인 셈이다.

 녹색 교통혁명을 달성하는 데 진정한 전봇대는 자전거가 아니라 도로교통법이다. 세계 각국은 지금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값싸고 성능이 우수한 휘발유 자동차 대신 비싸고 성능이 떨어지는 전기차를 구입하는 국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도심 곳곳에 충전기 설치도 늘리고 있다. 서울에는 전기차를 위한 충전기 하나 없다. 대한민국 도로에서는 전기차가 달릴 수조차 없다. 경기부양을 위해 10년 이상된 노후 차를 새 차로 바꾸면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도 전기차는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대신 전기차 개발을 위해 예산을 얼마나 투입하고 전국을 스마트 그리드화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만 열심히 펼치고 있다. MB가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을 때마다 전기차도 한번쯤은 몰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울 수 없다.

 전기차는 양반이다. 전 국민이 집 안에 편안히 앉아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는 기술적으로 이미 완성됐다. 그런데도 의료법이라는 전봇대에 막혀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구촌 어디와도 영상회의가 가능한 지금도 현행 의료법은 면대면(面對面) 진료만 인정한다. 꽉 막힌 현실이 답답하다는 모 의사는 폐업이 늘고 있는 각 지역 의원을 원격의료센터로 만들자고까지 제안했다. 지역 의원을 원격의료센터로 만들면 의원 의사와 종합병원 의사가 공동진료를 할 수 있다. 일종의 변칙이지만 면대면 진료다. 이 의사는 자신의 제안에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국민이 종합병원을 오가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가. 이젠 전봇대를 옮길 게 아니라 뿌리 채 뽑아야 할 때다. ‘뚫어뻥’처럼 시원하게 뚫어버릴 때다. 유성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