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석정현 작가/­윤태호 작가의 ’야후’

[내 인생의 만화]석정현 작가/­윤태호 작가의 ’야후’

 “군대 제대 후 윤태호 선배의 ‘야후’를 봤는데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림쟁이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정말 훌륭한 작품을 봤을 때 가슴 떨리고 멍하게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귀신’ ‘환장’의 석정현 작가(34)는 야후를 ‘만화가로서 가고 싶은 지점’이라고 표현했다. 청소년 잡지 부킹에 연재된 야후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속에 놓인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내전이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룬 일본 작품 ‘인랑’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석 작가는 “인랑이 몇 사람의 불행한 내면을 이야기했다면 야후는 기형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형아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스케일이 더 크다”고 평했다.

 그는 “야후는 당시 인상적인 한 방을 먹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만화를 어린이가 보는 콘텐츠로 여기고, 성인만화라고 하면 성(性)을 다룬 작품만 떠올리던 시기에 섣불리 다룰 수 없던 주제를 다뤄 새로운 인식을 심어줬다는 설명이다.

 처음 연재를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된 작품이지만 석정현 작가는 야후를 지금 현실에도 딱 맞는 만화로 꼽았다.

 그는 “4대 강 정비사업이니 뭐니 해서 너무 급히 가고 있는데 현상보다 내면 인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부연했다.

 석정현 작가에게 야후는 작가로서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부터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운전석에 앉아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 같았는데, 야후가 만화가로서 어떤 지점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석정현 작가는 최근 윤태호 작가와 함께 ‘MB 악법 저지 릴레이’에 참가하기도 했다.

 스스로 윤태호 마니아라고 말하는 석정현 작가에게 ‘야후’는 고(故)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 우라사키 나오키의 ‘몬스터’ 등과 함께 오롯이 전권을 소장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처음 야후를 본 후 아직까지 다시 읽지 않았다고 한다.

 “쉽게 펴볼 수 없는 작품입니다. 만화를 그리는 시각에서 다른 작품을 보며 분석도 하는데, 그런 마음도 들지 않고요. 나중에 성숙한 작가가 돼서 야후 정도의 작품을 하게 되면 그때야 펴볼 수 있겠지요. 그 시기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 경외하던 윤태호 작가를 이제 사석에서는 ‘형님’이라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석 작가는 가까이서 본 윤태호 작가를 “가슴에 떨림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는 “우리를 감싸는 사회 문제에 불만이 많고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며 “기득권에 대한 불만이 사회를 바꾸니까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볍지 않고 천박하지 않게 유머를 적절히 구사하는 점은 석 작가가 꼽는 윤태호 작가만의 미덕이기도 하다.

 최근 윤태호 작가가 이끼로 유명세를 타자 왠지 나가 좋아하는 작가를 빼앗긴 것 같아서 서운하기도 하는 석정현 작가. 그는 한번쯤 야후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야후가 내 옆에서 숨쉬는 작품이라는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후는?

 ‘이끼’로 제2의 전성기를 열고 있는 윤태호 작가가 1999년도에 한 청소년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사회 고발적 시선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부실공사로 무너지는 건물에 아버지가 압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김현과 부끄러운 아버지의 사회에 침묵하는 대다수의 양심을 대변하는 신무학이라는 두 인물이 축을 이룬다. 사회의 수많은 비리 앞에서 분노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한국 성인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석정현 작가는

본명 석정우. 2002년 단편만화 ‘노르웨이의 숲’으로 데뷔했다. 각종 자연재해를 겪으며 지구가 죽음의 땅으로 변모된 이후를 다룬 첫 번째 단편집 ‘귀신’으로 2006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데뷔 이후 국내에서 손꼽히는 ‘디지털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통한다. 최근에는 MB악법 반대 릴레이 만화에 참여하는 등 만화를 통한 사회 참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만화로 만드는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다음 달 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만화전시회에서 비보이들과 함께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이는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