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가까이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해온 방송광고 대행판매시장이 어떤 모습의 경쟁체제로 바뀔 것인가.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도입이 어떻게든 연내까지는 결론이 나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방송.광고계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 한선교(한나라당) 의원의 민영 미디어렙 관련 법안 발의가 본격적으로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 “미디어법부터 먼저 결론나야” = 한 의원은 지난 15일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한 의원을 포함해 발의자가 12명인 이 법안은 “방송광고시장의 비효율성 개선 및 방송.광고산업 활성화를 위해 방송광고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고자 한다”는 제안이유를 달고 있다. 이 법안은 앞으로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업자의 범위를 방송통신위원회가 허가한 사업자로 확대하고 KBS와 EBS 등의 방송광고판매대행과 방송광고산업 활성화를 위한 한국방송광고대행공사를 설립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의원의 선제적인 도입 논의에도 불구하고 방송계에선 미디어법 처리가 선행된 후에야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가능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신문.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허용한 방송법 처리 방향에 따라 방송업계 전체 판도가 새로 짜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방송사엔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현 시점에서 논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이라는 것이다. 방송업계의 새로운 상황을 예측할 수 있어야 그에 맞춰 방송광고 판매시장 논의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미디어법 처리 시점을 현재로선 예측하기가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조문 정국’은 미디어법 처리와 연계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활동 중단을 불러왔다. 또한 임시국회 일정이 순연됐고 한나라당내 일각에서는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감지되는 등 향후 미디어법 처리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일단 미디어법의 처리 여부를 지켜본 뒤 향후 방송업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방송광고판매 시장의 경쟁체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전 경쟁체제” vs “제한 경쟁체제” = 어떤 방식으로 방송광고 판매대행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곧바로 ’완전 경쟁체제’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지역.종교 방송 등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 경쟁체제’를 일정 기간 유지해야 하는지를 놓고 ’대치전선’이 형성돼 있다. 사실상 ’다민영 미디어렙’ 완전경쟁체제를 상정하고 있는 한 의원의 법안에 대해 지역.종교 방송사들은 광고수익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MBC와 SBS가 각각 51%까지 지분을 보유한 민영 미디어렙을 허가받으면 이들과 경쟁할 만한 민간 대행사는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체제 도입 형식과 관련해선 헌법재판소가 허가제, 가격상한제, 쿼터제 등을 직접 예시함으로써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보장하라고 강조, 실질적으로는 ’제한적 경쟁체제’를 도입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상당수 방송광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역.종교방송은 물론이고 광고주.광고회사 등 광고계, 케이블TV.IPTV 등 뉴미디어업계, 신문사, 언론시민단체 등 각계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 합 뉴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