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실패와 달콤한 성공.’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10년을 넘길 정도로 일천하다. 1996년 말 아이엔씨테크놀로지 설립을 시작으로 다윈텍(1997년)·넥스트칩(1997년)·티엘아이(1998년)·코아로직(1998년)·엠텍비젼(1999년)·실리콘웍스(1999년)·텔레칩스(1999년) 등의 팹리스 기업이 출현했다. 상당수 팹리스 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성공과 실패를 맛봤다. 진입 장벽이 높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특성 탓에 자금 유치에 항상 어려움을 겪었다. 또 시장에 너무 빨리 진입해 마케팅 측면에서 낭패를 보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속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오넥스는 최근 CDMA 베이스밴드 기술을 대만 미디어텍에 헐값으로 넘겼다. 자금난 탓에 수년간 땀흘려 개발한 소중한 노력의 결과물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기술은 세계적 기업인 퀄컴 외에 우리나라 이오넥스만이 2002년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세계에서 주목을 받았고 이오넥스는 ‘제2의 퀄컴’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없어 후속 투자를 못했고 그 결과 매출도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미디어텍의 돈을 융통한 게 화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역시 실패를 맛봤다. 삼성은 1999년 6월 64비트 1㎓ 알파 CPU를 미국 컴팩과 세계 최초로 공동 개발에 성공했다. 선발업체가 발표한 550㎒ CPU에 비해 처리 속도가 최소한 두 배 빠른 제품을 1년 먼저 선보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당시 알파CPU 매출을 2억달러에서 2002년까지 15억달러의 매출을 자신했지만 노하우 부족으로 2년 만에 알파 CPU 사업을 접었다. 대신 삼성전자는 알파 CPU 개발 경험을 토대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 진출, 내비게이션 AP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성과에 만족해야 했다. 이방원 애트랩 사장은 “삼성전자가 CPU 시장에서 너무 앞서간 면이 없지 않지만 CPU 주도권을 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CPU 사업을 포기했다”고 아쉬워했다.
티엘아이는 1998년 국내 최초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MP3 디코딩 칩을 개발, 대박을 노렸다. 1999년 말부터 삼성전자에 100만개의 칩을 판매해 2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MP3플레이어 내수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MP3플레이어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진입한 것이다. 이준희 티엘아이 상무는 “MP3플레이어 시장이 2년 뒤인 2001년부터 열리기 시작했다”며 “시장에 조기 진입한 게 MP3 디코딩 칩 사업 실패원인”이라며 “이후 주력 제품을 디스플레이 타이밍컨트롤로 전환,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에이디칩스는 1999년 EISC CPU를 개발했지만 높은 진입 장벽 탓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애트랩은 세계 5대 반도체 기업인 ST마이크로에 DCC(Digital Contact Controller) 반도체설계자산(IP)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등 국내 기업들은 10여년 동안 성공과 실패를 겪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만이 생존 가능하고 승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생존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