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산업에서는 삼성전자도 마이너 리그의 한 주자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작년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를 떼어버리면 삼성은 14위권으로 밀려난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작년 31억3500만달러(3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한쪽 날개에만 의존하는 반도체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전력반도체 사업을 지난 1999년에 매각하는 등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등한시한 이후 기술 경쟁력과 설계 노하우가 빈약한 탓에 빚어진 결과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조차도 이런 위상인데 하물며 중소기업인 팹리스 기업 경쟁력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반도체 산업에서 시스템반도체는 재료·장비·부품과 함께 무역수지 적자를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지목되는 실정이다. 올해 정부와 반도체 기업이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육성, ‘제2의 반도체 신화를 건설하자’고 목소리를 한껏 높이기 시작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약 4배인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차기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국산화 노력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초라한 코리아 시스템반도체 성적표=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보다 큰 시장을 갖고 있지만 국내 산업 기반은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작년 전체 반도체 산업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82.4%(1711억3600만달러)였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우리나라 종합반도체(IDM)·팹리스 기업의 점유율은 고작 2.4%에 불과하다.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팹리스 기업만의 시장 점유율은 1.3%로 시장 지배력이 더 떨어진다.
국내 IDM·팹리스 기업은 작년 시스템반도체를 131억2700만달러 수출했다. 반면에 세트 업체들은 시스템반도체를 202억2400만달러 수입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수지는 만성 적자다. 휴대폰·LCD TV·자동차 등 우리나라 수출 효자 품목 내부를 일일이 뜯어보면 핵심 부품인 시스템반도체는 대부분 외산이다. 그나마 메모리반도체 성격이 짙은 CMOS 이미지센서와 LCD 구동칩에서만 우리나라가 우위를 보일 뿐 컴퓨팅·네트워킹·통신·자동차·무선 등 분야의 시스템반도체에서는 경쟁력이 크게 처지고 있다.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 100대 기업 순위에 들어가는 국내 기업도 단 5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14위를 차지했다. 순위가 한참 내려간 45위에 엠텍비젼, 코아로직 89위, 텔레칩스 95위, 티엘아이 96위 등을 각각 기록했다. 국내 팹리스 기업은 200여곳 존재하지만 2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10여곳에 불과할 정도다.
반면에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일본·대만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보이고 있다. 일본 르네사스는 5위, NEC는 7위, 도시바 8위, 소니 10위를 각각 차지했다. 또 대만 미디어텍은 17위를 기록했다. 특히 대만은 40위권에 든 8개 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21%를 점유, 우리나라는 시스템반도체에서 약자에 머물고 있다.
◇내재화 확대로 ‘제2의 반도체 신화’ 재현=비록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열악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시스템반도체 수입 비중이 조금씩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반도체 수입에서 시스템반도체 수입 비중은 79.4%에 달했다. 이후 2004년 81.6%로 증가했으나 2006년 79.6%, 2007년 69.9%, 2008년 63.2% 등 매년 하락 추세에 있다.
특히 가장 취약했던 아날로그반도체 분야에서 팹리스 기업의 반란이 시작됐다. 올해 들어 실리콘마이터스·디엠비테크놀로지·동운아나텍 등이 전력관리칩(PMIC)·자동초점(AF) 구동칩 등에서 맥심·아날로그디바이스 등 외국 기업과 어깨를 겨루기 시작,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민관이 2015년 시장 점유율 9.5% 달성을 목표로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휴대폰·디지털가전·지능형자동차 등 주요 시스템 분야를 선정하고 이에 필요한 분야별 통합 플랫폼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스타 SoC 개발 사업 관련 3개 과제를 올해 추진하고 2013년까지 6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기업과 팹리스 기업이 공동으로 유망 품목을 선정하고 기술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클러스터 펀드를 이용해 투자 자금도 지원한다. 글로벌 감각 제고를 위해 인텔·퀄컴·ST마이크로 등 해외 유명 시스템 반도체 기업과 협력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추진, 고급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황기수 코아로직 고문은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본격 육성, 메모리에 편중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며 “유망 플랫폼을 개발하기까지 고비용과 긴 개발 기간이 필요한만큼 대기업과 팹리스 기업이 공동 투자하고 비용을 분담하는 상생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