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나노 기술의 안정성 검증

[ET단상] 나노 기술의 안정성 검증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작은 물질을 사용하는 꿈의 신기술인 나노 기술의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들이 잇따라 나노 기술 연구에 나서면서 10억분의 1m급 소재를 이용한 화장품에서 항공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노 기술은 손목시계만 한 슈퍼컴퓨터 출현이나 인간의 몸에 들어가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 기술 개발 등 상상 속의 일을 현실이 되게 만들 것이다. IT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이 나노 기술에 가지고 있는 기대는 다른 선진국 못지않다. 향후 세계 나노 시장의 65% 이상이 반도체 및 IT 관련 산업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인류에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 같은 이 나노 물질이 유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원재료 상태에서 무해하던 물질이 가공 과정에서 해롭게 변할 수도 있다. 또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신체에 축적돼 몸에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나노기술이 인체와 자연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 1위의 나노기술 투자국이라는 미국은 이미 2007년부터 이 기술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시하며 관련 연구에 착수했다. 나노 기술 표준을 담당하며 관련 연구를 주도하는 국립과학재단(NSF)이 이 유해성을 인식하고 먼저 대비책 마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미국 등 해외 경쟁자들에게 향후 안전성을 문제 삼아 기술 개발이나 제품 상용화 주도권을 뺏기는 일을 방지하려면 국산 기술과 제품에도 안전성을 검증하도록 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초기 단계에 있는 산업의 표준을 한 국가가 선점하면 다른 나라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기술이나 특허에서 다른 경쟁국을 압도한 상황에서 안전성 검증 기술까지 먼저 상용화하는 것에 대비해 우리도 자체 검증 능력을 갖춰야 한다.

 현재 국내 규제기관이나 기업들은 너무 작은 나노 단위의 유해 정도를 측정할 방법을 찾지 못했거나, 예산상의 문제로 유해성 실험연구를 등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노 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제조 방식에 약간의 변경만 있어도 소재 성질이 바뀌는 민감한 성격 탓에 모든 제품에 세세한 유해성을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이 점차 첨단화되고 세밀해질수록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 파괴력 또한 크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로 불리는 석면은 대부분의 건물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난 후에야 유해성 판정이 내려졌다. 각국 정부는 이 사실이 알려진 후에야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유해성과 안전성의 구체적인 검증은 필수다. 나노 기술의 이러한 위험성에 사회적인 인식과 논의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국제특허협력조약(PCT) 국제특허’ 출원 건수 세계 4위를 유지했다. 이 중 나노 기술 분야의 특허 비중은 20.7%로 지난해 나노기술 연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술 유해성의 대비가 없어 향후 기술 적용에도 큰 우려가 따르고 있다. 나노 기술이 차세대 먹거리로 온 힘을 쏟고 있는 기술력이라면 앞으로 그 제품을 상용화해서 판매할 때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 대비도 함께 고려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수찬 에이치시티 사장 sclee@h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