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 넘어졌다. ‘어서 일어나’라고 한심해하는 친구보다 진흙탕에 몸소 들어와 진흙투성이인 나를 안아 줄 때 가슴이 뜨거워진다.
신영복님의 말처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다. 직장동료 아픔을 위로해 줄 때도 마찬가지다. 동료의 하소연 앞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 쉽지 않지만 함께 아파하고 스스로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 주는 것은 쉽다. 그 누구의 위로보다 동료의 위로는 생생하다. 회사 속사정을 잘 알고 지금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더 절실하다.
직장동료는 단순히 같은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절친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 경계선은 같이 질펀하게 취할 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 곁에 있어 주고 마음 담긴 위로를 나눌 때 허물어진다. 동료의 하소연에 괜시리 말 섞었다가 덤탱이 쓸까봐 몸을 사린다는 사람을 만나면 참 쓸쓸하다. 동의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동감할 수 있을 텐데, 해결책을 찾아줄 수는 없지만 들어줄 수는 있을 텐데. 지레 뒷걸음질치는 그를 보면 안쓰럽다.
직장인들이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제일 많이 있는 곳이 직장이고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이 동료다. 직장은 제일 많이 마음 고생을 주기도 하지만 제일 많이 마음 위로를 주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
슬럼프에 빠진 동료를 위로할 때 현란한 묘수가 아니어도 좋다. 똑부러지는 해결책이 없어도 좋다. 밥숟가락도 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진수성찬이 되레 부대낀다. 그저 그의 초라하고 빈 밥상에 생색없이 마주 앉아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지 모른다. 그저 곁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주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주변의 동료를 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