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구매제도 개편의 핵심은 ‘상생’과 ‘투명경영’이다. ‘슈퍼 갑’인 KT가 납품 업체를 동반자적인 협력 관계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개선안이 최저가 입찰제를 대신하는 이중가격제다. 최저가 입찰제는 그동안 KT 구매제도의 근간이면서도 납품 업체로부터 개선 1순위로 꼽힌 제도다.
실제로 KTF가 합병 전인 지난 4월 진행했던 이동통신 중계기 연간 단가 계약은 대외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10개 품목입찰 평균가격이 예정가격(341억원)의 64%인 218억원에서 결정됐다. 부품가격도 못 건지겠다는 협력사들의 비판이 거셌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던 기가비트이더넷 수동형광네트워크(GE-PON)의 가입자 단말기(ONT) 공급업체 선정 입찰도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KT가 최저가에 맞춰줄 것을 요구했으나 차순위에 있던 업체들이 납품 포기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개선안이 변화의 시발점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제도 개선안에서 상생과 함께 담고 있는 숨은 의도는 고질적인 납품 비리의 차단이다.
평가·구매조직 이원화가 이에 해당된다. 시험평가(BMT)와 구매 조직을 분리함으로써 회사 내 견제 구도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 KT는 2∼3년 단위로 각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들의 납품 비리가 발생했다. 최고경영자(CEO)인 이석채 회장의 ‘깨끗한 KT’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새 구매제도에 강하게 반영됐다.
새 제도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KT 임직원의 자발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전에도 납품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구매제도 개선안이 발표됐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개선안의 세부적인 내용도 보완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중가격제가 최저가 입찰제의 문제점을 100%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 납품 실적을 갖춘 업체의 평가절차 간소화도 국내업체에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외에도 지나치게 짧은 납품 기간(보통 4주)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T 고위 관계자는 “회사 전체의 구매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한 혁신적인 작업으로 봐달라”며 “조만간 CEO가 새로운 구매제도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KT의 구매제도 개편안은 다른 통신그룹의 장비 구매 절차의 투명성을 더욱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오너십이 명확한 SK텔레콤과 LG 통신그룹은 KT와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슈퍼 갑’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은 대동소이하다. 특히 관문(?) 역할을 하는 그룹 관계사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외부로 노출이 되지 않을 뿐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도 일부 있다. 통신업계 맏형 격인 KT의 구매절차 개선으로 협력업체와 ‘상생’ 분위기가 조성되면 다른 통신사업자들도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전망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