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세계 일류화를 위해]<1부>주력산업(7)베이스밴드 칩

 우리나라의 휴대폰 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 몰아친 경기침체에 휴대폰 업계 영원한 1위 노키아는 물론이고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 모두 크게 휘청이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만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올 2분기 역대 최다 실적을 예고하고 있을 정도로 국내 휴대폰 산업은 탄탄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과연 우리나라가 해외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 앞으로 건강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외화내빈’ 휴대폰=휴대폰을 이루는 주요 부품으로는 △베이스밴드 칩 △디스플레이 모듈 △카메라 모듈 △배터리 모듈 △메모리 △PCB 등이 있다. 모뎀 칩이라고도 불리는 베이스밴드 칩은 통화의 기본이 되는 디지털신호와 통화 호(呼) 처리를 위한 부품이다.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의 모듈은 흔히 알고 있는 부품들을 휴대폰에 조립하기 쉽게 만든 부품의 한 형태다.

 우리나라 휴대폰 중 국산 부품의 채택률은 2008년 현재 보급형 모델은 68%, 고급형 모델도 63%에 이른다. 휴대폰을 만드는 데 100가지 부품이 쓰인다고 가정하면 평균 65개 정도가 국산이란 얘기다. 수치상으론 나쁘지 않아 보인다. 국산 비중이 많다는 것은 휴대폰을 필두로 부품을 만드는 후방 산업 역시 동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게 있다. 바로 PC의 CPU 격인 베이스밴드 칩이다. 카메라, 디스플레이 등의 부품 국산 채택률은 100%에 이르지만 유독 베이스밴드 칩만은 전무하다. 전자부품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06년에도, 2007년에도, 그리고 지난해에도 유독 베이스밴드의 국산 채택률은 0%였다.

 ◇‘화려하지만 치명적인, 베이스밴드 칩’=베이스밴드 칩은 휴대폰을 구동하는 데 핵심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부품이다. 그러나 휴대폰 강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가 외산에 의존하는 유일한 부품이다. 외국 기업의 시장 선점, 특허 장벽 등으로 인해 국산화의 통로가 막혔다. 외산이라도 채택해 경쟁력 있는 완성품(휴대폰)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베이스밴드 칩이 휴대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데 1차적 문제가 있다.

 전자부품연구원에 따르면 휴대폰 한 대를 만들 때 소요되는 비용 중 베이스밴드 칩의 비중은 지난해 26%였다. 휴대폰을 만드는 데 100원이 든다면 26원이 고스란히 해외 나갔다는 뜻이다. 그나마 2007년에 비해 2%포인트 낮아진 게 이 정도다.

 베이스밴드 칩은 다른 휴대폰 부품들 중 가장 비싸다. 눈으로 보기에도 덩치가 있는 디스플레이 모듈보다 두 배 비싸고 DMB 모듈이나 PCB보다도 네 배 정도 고가다. 이 얘기는 무엇을 뜻할까. 값비싼 부품, 다시 말해 우리가 만들면 국가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란 시장 가치만의 의미가 아니다. 부품 하나로 산업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종속 관계 언제까지’=“로열티 좀 깎아 주시죠.” 지난 2004년 5월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한 포럼에서 한국 퀄컴 사장에게 던진 농담 한마디다. 퀄컴은 잘 알려진 것처럼 CDMA 기술의 원천 특허를 갖고 같은 방식의 베이스밴드 칩을 공급하고 있는 미국 업체다. 퀄컴은 CDMA 방식에서 베이스밴드 칩을 공급하는 업체일 뿐만 아니라 로열티도 받는다. 우리 기업들이 CDMA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모든 CDMA폰에 퀄컴 칩을 쓰면서도 우리는 대당 5∼7%에 이르는 로열티까지 지급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1995년 이후 퀄컴에 치른 로열티 금액만 5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진 장관의 농담은 실제로는 뼈 있는 얘기였다.

 계약 방식이, 로열티 금액이 맘에 안 들고 불공평하다고 해서 버릴 수도 없다. 휴대폰의 핵심인 칩을 공급 받지 못하면 휴대폰도 없다. 그래서 억울한 일도 있다. 지난 2004년 단적인 예가 있었다. 퀄컴이 한국 업체에 중국보다 훨씬 높은 로열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업체에는 면제해준 선급기술료도 받는 등 총체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퀄컴은 한국업체들에 선급기술료를 500만∼700만달러까지 받으면서도 중국과의 계약서에는 선급기술료를 받지 않겠다고 명시하는 등 로열티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 업체들은 “다시 로열티를 따져 묻겠다”고 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로열티는 여전히 지급되고 있으며 ‘벙어리 냉가슴’ 같은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베이스밴드 칩은 부품 중에서도 그야말로 ‘핵’이다. 그렇기 때문에 놓칠 수 없는 분야고 도전해야 할 부문이다. 베이스밴드 칩이 없으면 휴대폰도 없다. 산업, 시장으로서의 가치를 떠나 치열한 경쟁에서 제조 원가가 높은 베이스밴드 칩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베이스밴드 칩을 국산화하지 못해 외산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언제, 어떻게 발목을 잡을 지 모른다. 휴대폰을 국가의 주력 수출품으로 두고 있는 우리가 시급히 풀어야 할 이유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