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앞선 독점적 기술의 위력을 절감해왔다. 원천기술 보유가 단순한 특허의 개념을 넘어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고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지 값비싼 수험료를 내면서 몸소 체험했다. 그 결과 얻은 교훈이 바로 차세대 통신 시장의 선행 투자다.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현재 3세대에 와 있는 이동통신 시장이 3.5세대를 넘어 4세대로 가면 퀄컴의 그늘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 것이란 기대를 품고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토종 기술인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다. 국내 기술을 주축으로 만든 와이브로는 세계 최초로 KT와 SK텔레콤이 상용화한 데 이어 3세대 국제 표준으로 만들었다. 또 지속적인 기술 발전으로 진화를 거듭, 유럽에 근간을 두고 있는 롱텀에벌루션(LTE) 기술과 4세대 표준을 놓고 경쟁하는 수준까지 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은 한국의 와이브로와 노키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LTE 2개의 기술로 압축된 상태다. 최근 퀄컴이 비용절감을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을 추진해오던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UMB(Ultra Mobile Broadband)’ 개발을 포기하면서 양자 구도가 됐다.
와이브로와 LTE의 양자 대결에서 속도 면에서는 와이브로 쪽이 좀 더 앞서가고 있다. 지난 10월 초 삼성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 및 시연에 성공한 ‘와이브로 에벌루션’ 시스템은 시속 350㎞의 고속 이동차량에서 전송 속도 20Mbps 이상으로 HDTV급 무선 인터넷을 할 수 있다.
하지만 LTE는 속도에서 와이브로와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현재의 WCDMA망을 기반으로 발전한 기술이어서 기존 네트워크 망과 유연한 연동이 가능하고 기지국 설치 등 투자비용과 운영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강점이다.
당연히 기존 네트워크 망을 운용 중인 무선사업자들은 LTE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현재까지 미국 버라이즌, 유럽 보다폰, T모바일, 오렌지, 일본 NTT도코모, KDDI,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같은 대형 이동통신사가 LTE를 4세대 이동통신 방식으로 채택했다. 이 때문에 와이브로를 개발한 삼성전자 역시 LTE 이동통신기술 개발을 병행하고 있고, 글로벌 경쟁에서 상당히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이브로가 세력 면에서 열세에 놓였지만 상용화 측면에선 LTE에 비해 앞서 있다. 이미 국내(KT, SK텔레콤)와 미국(스프린트넥스텔)에서 상용서비스를 제공 중이고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4세대 이동통신 도입시기가 빠를수록 와이브로가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살은 떠났다. 이제 관건은 우리 기술이 ‘시장표준’으로 자리 매김하는지에 달렸다. 시장 선점으로 지배력을 얼마나 키우는지에 따라 기술독립 실현 여부가 달렸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