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도메인` 인수전으로 본 실리콘밸리 지역감정

`데이터도메인` 인수전으로 본 실리콘밸리 지역감정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을 차지하기 위해 인수전을 벌인 두 기업이 있다. 현금 보유액이 72억달러인 대기업 A는 전액 현금 지불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B기업은 덩치도 A보다 작은 데다 현금과 주식을 섞어 지불하기로 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A의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의외로 주주들은 B를 선택했다. 스토리지 라이벌인 EMC와 넷앱의 데이터도메인 인수전에서 데이터도메인 주주들은 언뜻 보기에 매력적인 A의 제안을 거절했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인수전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대서양 연안 기업간 문화적 이질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에도 지역감정(?)=EMC는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매사추세츠주 소재 기업이다. 반면 넷앱은 데이터도메인과 불과 6마일 떨어진 위치에 인접한 실리콘밸리 기업이다.

 데이터도메인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돈’보다 ‘(문화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한) 가치’라고 외신은 풀이했다.

 인수합병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태평양 연안 기업들이 타 지역, 그 중에서도 동부 지역 기업에 의해 인수당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HP·인텔 등이 둥지를 튼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독특’하다. 그들 스스로 변화에 민감하고 수용적이며 평등한 조직 구조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복장도 자유롭고 금요일마다 맥주 파티로 긴장감을 푼다.

 이와는 반대로 대서양 연안의 EMC와 IBM, 제록스 등은 규칙에 얽매여 있고 관료적이며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린 한 마디로 ‘고지식한 집단’이라는 게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시각이다.

 과거 EMC가 인수한 캘리포니아주 기업 출신의 한 엔지니어는 “동부의 문화는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월스트리트의 주가에 따라 출렁인다”며 “이는 기술에 더 열광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많이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많이 변했어요.”=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EMC는 이번 인수전에서 데이터도메인 직원에게 직접 공개 서한을 보내는 등 조바심을 내비쳤다.

 조 투치 EMC 회장이 직접 사인한 이 편지에서 EMC는 “지난 2002년 이후 실리콘밸리 업체 11개를 인수, 총 6000명의 직원이 재직 중”이라며 “EMC는 다양한 기업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늘 염두에 둔다”고 호소했다.

 EMC의 인사 담당 잭 멀른 부사장도 “최근 5년간 총 50개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각 기업의 문화를 흡수하는 유연성을 배웠다”며 “캘리포니아주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EMC의 문화도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EMC는 수년간 고수해온 넥타이 대신 ‘적당히 편한 복장’을 선택했다. 실리콘밸리 태생 EMC 자회사들은 금요일 오후 맥주 파티를 계속 연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동·서부=하지만 EMC의 끈질긴 구애 작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주들은 일단 넷앱을 선택했다.

 8년이 채 안 된 데이터도메인 역시 ‘벤처기업’의 문화를 지니고 있어 EMC와의 결합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동·서부 기업의 결합이 성공보다는 실패로 끝난 사례가 더 자주 부각됐다.

 지난 1999년 IBM이 8억달러에 사들인 시퀀트컴퓨터는 3년 후 운영을 중단했다.

 EMC가 2002년 실리콘밸리의 VM웨어를 인수한 뒤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지난해 투치 회장은 실리콘밸리의 유능한 사업가로 주목받아온 다이앤 그린 VM웨어 공동창업자 겸 CEO를 해고했다. VM웨어의 성장세가 꺾이고 주가가 하락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댄 워멘호벤 넷앱 최고경영자(CEO)는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의 기업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들 두 지역 기업 간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동부의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