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 강주배­ 작가,허영만 화백의 ‘각시탈’

[내 인생의 만화] 강주배­ 작가,허영만 화백의 ‘각시탈’

 “‘각시탈’은 다른 어떤 만화보다 공감을 많이 했어요. 어떤 만화들은 재미있어도 보고 나면 아쉬움이 남곤 했는데, 각시탈은 작가가 부여한 대로 끌려가게 되더라고요.”

 ‘무대리’의 강주배 작가는 몇 번의 고민 끝에 허영만 화백의 ‘각시탈’을 그의 인생의 만화로 꼽았다. 강주배 작가는 ‘각시탈’을 “작가의 혼이 실린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이소룡을 좋아해 학교 뒷산에서 흉내도 냈지만 내성적이었던 중학생 강주배 작가가 ‘각시탈’을 처음 본 곳은 그 시대 여느 청소년이 그랬듯 만화 대본소였다.

 강 작가는 “그땐 각시탈이라면 무조건 봤다”며 “다음 권이 나올 때까지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내가 이어서 그려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무엇이 그토록 강 작가를 각시탈에 빠지게 했을까. 그는 “상황 묘사가 영화를 보는 듯 현실감 있으면서도 만화적인 요소가 재미있게 배치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평소에는 한복 입고 바보 같던 주인공이 각시탈을 쓰고 나타나서 싸움할 때의 통쾌함은 내가 작품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요. 어떤 때는 각시탈이 빨리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사람을 죽이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고뇌에 빠지고 그랬죠.”

 강 작가는 각시탈의 그림에서 뿜어지는 선의 매력도 극찬했다. 그는 “선이 투박하면서도 살아 있는 느낌을 주고 정말 곱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허영만 화백의 작품을 잘 보지 않게 되는 이유 중 하나도 문하생의 영향이 있어 허영만 화백 고유의 그림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각시탈’ 외에도 ‘요괴인간’ 등 어지간한 만화는 빼놓지 않고 봤다는 강주배 작가. 그는 만화가 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게 “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독자가 정지돼 있는 화면에 머무르며 더 오래 더 깊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후 각시탈이 영화로 제작됐단 소식에 극장에 가서 봤지만 “사실 너무 재미없어서 기억조차 안 난다”고 말했다.

 강 작가가 만화계 입문을 ‘독고탁’의 이상무 선생 문하생에서 시작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상무 선생님을 찾아간 것도 허영만 선생님 주소를 알려고 간 것이었다”며 “내 습작을 본 이상무 선생님이 밑에서 일하라 해서 그 밑에 있게 됐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이후 독립해 활동을 하다 다시 이상무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다른 만화가 화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허영만 화백의 화실을 찾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당시 나름대로 이 바닥에 발을 담갔는데, 이 선생님의 친구의 화실에 들어간다는 건 배신이라고 여겨져 아예 생각조차 안 했던 거 같아요.”

 그는 현재도 열심히 활동하는 선배를 보며 “천직이 만화가”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게 30년 넘게 꾸준히 작품을 하면서 한 번도 소홀한 작품을 안 내놓으신다는 거예요.”

 1980년 이상무 선생 수하로 만화를 시작했으니 강주배 작가 역시 만화계 입문한 지 30년이 다 돼간다. 그 긴 시간 동안 존경하는 선배 작가를 사석에서 한번쯤 봤을 법도 하건만 그는 “팬이었단 말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글쎄요. 내가 갖고 있는 환상이 깨질 것도 같고. 저는 제 작품에 몰두하고, 그 분은 계속 지금처럼 활동하시는데 만납시다 그러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강주배 작가는?

 샐러리맨의 애환과 슬픔을 잘 묘사한 ‘무대리’의 작가다. 그의 대표 캐릭터인 ‘무대리’는 작가 스스로 “무대리가 나보다 유명하다”고 할 정도로 10년 가까이 대한민국 직장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광주 출신인 그는 순수미술을 공부하다 고교 졸업 후 ‘독고탁’의 이상무 선생의 문하로 만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무대리’의 서민적인 캐릭터 때문에 각종 사회 단체에서 홍보대사 제의가 들어온다는 그는 최근에는 노동부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소외된 이웃과 살을 부대끼고 싶은 생각에 1년에 한 번은 장애인에게 만화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각시탈은?

 1974년 만화계에 허영만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출세작으로 꼽힌다. 주인공 이강토가 일제의 앞잡이라는 반민족적 행위를 했다는 자책 뒤에 각시탈을 쓰고 일제를 응징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역사만화로 읽히기도 하고 항일 정신이 강하게 녹아 있어 이념만화로 읽는 이들도 있다. 월간 우등생 창간호 별책부록으로 간행됐다가 물개문고에서 전체 시리즈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