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특허소송 건수가 늘고 있다. 특허소송은 침해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돼 발생되는 피해를 막아 국내산업을 보호한다는 원래 취지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기업들 간의 전략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ITC 소송으로 가해질 수 있는 광범위한 수입금지 조치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모두 예외일 수 없어 세계적인 강자로 자리를 굳힌 한국 IT제품의 판매전략에 족쇄를 채울 가능성이 있다. 1974년 탄생한 ITC는 행정소송을 통해 지식소유권 침해 및 덤핑 등 불공정 거래로부터 미국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ITC는 비전문 행정기관으로 독자적인 특허 해석을 통해 판결을 함으로써 사법부 판례와 일관성 없는 판결을 내기도 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ITC에서 내려지는 수입금지 조치는 금전적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하지만 구제 조치 중의 하나인 ‘제한적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침해제품뿐 아니라 그 부품이 들어간 제품까지도 수입금지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중소기업의 반도체 부품이 ITC 소송에서 침해 판정을 받게 되면 이를 사용한 대기업들을 원고가 지명, 한꺼번에 수입금지 조치를 받게 할 수 있다. 사법부 판례에 영향받지 않고 행정 처분으로 침해 제품에 광범위한 수입금지를 빠르게 받아낼 수 있는 특성 때문에 ITC 특허 소송은 최근 몇 년간 큰 증가 추세에 있다. 2002년 ITC에서 조사를 개시한 사건이 17건에 불과했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 지난해에는 38건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한국 기업들이 피고인 소송 건수도 6건이나 있었다.
행정기관인 ITC에 특허 소송이 몰리는 것은 최근 문턱이 높아진 연방법원에서 무효나 승소가능성이 낮은 특허 소송도 ITC를 거치면 수입금지 조치 및 영업방해 등의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유수의 법률 사무소들도 승소 시 피고에게 커다란 압박을 가할 수 있는 ITC 소송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침체로 그나마 쇠퇴해가던 제조업이 벼랑 끝에 선 미국은 중국과 같은 제조산업으로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지식소유권의 정당한 대가 지급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보호무역의 도구로 ITC 소송이 적극 활용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작년 초 미국의 월풀은 LG전자를 기소했고 플렉스시스 아메리카가 금호타이어를, 샤프가 삼성전자를 기소했다. 지난해 말 스팬션과 코닥이 각각 삼성과 LG를 공동 피고로 지명한 소송을 내기도 했다.
ITC 소송의 광범위한 수입금지 조치를 이용해 로열티 수입을 올리는 이른바 ‘특허괴물’의 소송도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로스차일드 콜롬비아대 명예교수는 LED업계를 대상으로 단파장 LED 및 레이저 다이오드의 제조 방법과 관련한 특허를 빌미로 관련 제품 및 이를 포함하는 모든 제품을 제소했다. 외국의 유수 제조 기업인 소니·모토로라·노키아와 함께 삼성·LG·서울반도체를 포함하는 30개가 넘는 기업이 공동 피고가 됐다. 이 소송에 제소된 대다수 기업은 라이선스로 수입금지조치 위험에서 벗어났다.
ITC 소송은 원고인 미국 기업이 피고인 외국 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제소,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의 장벽은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특허를 이용, 기업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IT산업이 국가 산업의 원동력이며 국가경제의 중추인 우리나라로서는 완제품을 수출하는 대기업만이 아니라 첨단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들도 ITC 소송 위협의 부담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전략적인 사전 대처방안 수립과 소송 전략 수립이 한국 IT산업의 성장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박종국 미국 변호사 jpark@ifourcorn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