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앞으로 정무직을 제외한 각 부처의 실무 간부인사를 장관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제23차 국무회의에서 “임기 초반에는 정권이 바뀌었던만큼 청와대가 불가피하게 관여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제 장관 책임 아래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면서 “다만, 장관들도 본인 인사(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각 부처와 교감하며 지난해 연말 교육과학기술부를 시작으로 농림수산식품부, 외교부, 총리실 등 일부 부처 1급 공무원의 일괄 사표를 받고 검증을 거쳐 재선임하거나 새로운 인재를 발탁하는 등 1·2급 인사는 직접 챙겨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정권 출범 후 1년 반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 같은 철학을 공유한만큼 장차관들에게 인사권을 대폭 이양함으로써 장차관들에게 힘을 실어줘 국정 개혁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법적으로 대통령은 공무원의 최종 임명권자지만 국장급까지는 장관이 위임을 받아 권한을 행사해왔다. 특히 어느 정권에서도 고위공무원단(1·2급)은 여전히 대통령 인사권하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정부 부처 1급 공무원은 280명 정도다. 이 대통령은 이와 함께 대통령 임명직위 공공기관 외에 장관 임명직위 공공기관장이나 감사 등의 인사도 청와대와 인사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장관이 행사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대통령 임명직위는 108개(기관장 65개, 감사 43개)며 장관 임명직위는 256개(기관장 128개, 감사 128개)에 달한다. 다만, 우리 사회의 높아진 도덕·윤리 기준에 맞게 인사검증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지금처럼 실시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부처 산하 기관장들의 평가가 좋지 않으면 해당 부처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 책임과 권한을 보다 명확히 할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이와 관련, “각 부 장관들이 산하기관 노사문제, 단체 협상 등 산하기관의 경영혁신에 책임감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산하 공공기간에서 비리가 발생하거나 기관장 평가가 좋지 않다면 장관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라며 “공공기관 개혁 성과가 장관 평가에 반영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산하 공공기관이 많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등은 앞으로 산하기관의 개혁에 더욱 신경 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노조와 갈등을 빚거나 강성노조에 휘둘리는 기관장이나 공공기관은 앞으로 부처 차원에서 강력히 개혁작업을 지휘할 것으로 보여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된다.
한편, 이 대통령은 “서민계층이 체감할 수 있는 확실한 로드맵을 갖춘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마련하도록 속도를 내달라”면서 “과거엔 없는 사람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으나 사교육 부담이 커지면서 점점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교과부 등 관련부처 장관을 질책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