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하루에도 몇 번씩 두 갈래 길에 선다. 따끔한 비판을 할 것인가, 따뜻한 격려를 할 것인가.
부정적 사실을 알릴 것인지 긍정적 전망을 밝힐 것인지 고민한다. 이론상으로는 선택의 여지 없이 둘 다 하라고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병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달착지근하기만 하면 금방 물린다. 씀바귀나 도라지의 씁쓸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것처럼 꾸중이 때로는 의욕을 북돋운다. 입에 쓴 것은 대체로 몸에 달다. 하지만 쓰다고 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귀에는 쓰지만 몸에 달게 잘 꾸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꾸중을 할 때에는 부하를 다각도로 관찰해야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장담하지 말고 뒤로 보고 옆으로 보고 미루어 보고 다르게 보자. 그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지도 모르고, 그가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실수한 것은 동료들의 담합 때문일 수도 있다.
둘째로, 꾸중할 때에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을 탓하자. 부하가 이걸 못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부하가 이 잘못을 모르고 넘어가 나중에 일처리 능력을 못 키울 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덤벙거리는 너’가 문제가 아니라 ‘너의 덤벙거림’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잘못된 행동을 걱정해야 한다. 행동을 탓하면 행동만 바꾸면 되지만 사람을 탓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셋째로, 꾸중의 결론은 격려로 마무리하자. 공격당하면 으르렁거리는 동물처럼 누구나 막바지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한다. 아무리 납득이 되는 꾸중도 믿고 싶지 않고, 저항하고 싶고, 핑계대고 싶다. 이럴 때 얼마나 믿고 있는지, 무엇이 감사한지, 어느 부분에서 힘이 되는지를 알려주면 상처에 바른 머큐로크롬처럼 회복이 빠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경은 “고함 지르기나 호통치기는 선수들이 감독을 존경할 때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