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장비업체의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장비 시장은 약 6조3000억원 규모지만 국내 장비생산은 1조2000억원으로 국산화율은 20% 미만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원천특허를 내세워 신규업체의 시장진입을 원천 봉쇄하려는 일부 외국계 업체들의 횡포로 영세한 국내 장비업체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궁극적으로는 장비 산업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볼 때, 국내 장비 산업 육성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의 지속적인 발전도 장비 산업과 접목될 때만 더 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독자 기술개발에 의한 장비 국산화는 고가 외국장비의 단가인하를 유발하고, 장기적으로 수요 업체의 거래처 다변화 및 투자비 절감 효과를 가져다 준다. 결국 원천기술 개발에 의한 장비국산화는 수요업체의 가격경쟁력 강화와 국내 장비산업의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윈윈 전략인 것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산업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부분 국내업체는 규모가 영세해 자금·인력·정보·원부자재 조달능력이 부족하고 막대한 초기 연구개발(R&D) 비용의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설계능력 및 성능평가 분석기술 등 기반기술 확보가 취약하다. 이 때문에 소자업체는 국내 장비업체의 개발능력과 품질, 납기에 불신감마저 갖고 있다.
반도체 장비를 국산화하기 위해서는 관련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장비업체가 핵심 부품 업체를 양성하려 해도 수량이나 제조원가 부담을 안고 있어 어렵기만 하다. 장비산업의 어려움으로 우수인력이 장비 업계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과 장비산업의 동반성장에 힘쓰고 있지만 정부와 대학, 수요업체 간의 명확한 역할분담이 시급하다. 정부는 단기 자금 지원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장비산업이 자생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업계는 단기 운영자금 지원보다는 실질 대책을 바라고 있다. 근본적인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부품소재 및 기술개발 프로젝트 과정에서 사업체 선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우선 국산화 대상설비의 난이도·기술수준·시장규모·시기 등을 감안해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국산화 유형을 결정하고, 정부가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장비산업 인재 양성 △R&D 비용 세제혜택 확대 △규모의 경제를 위한 M&A 지원 △해외업체의 무분별한 특허침해소송 제한 등 산업 구조를 경쟁력있게 육성하는 정책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외국의 선진 장비업체와 견줄 만한 글로벌 장비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정별로 최고 업체를 선택하고 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경쟁력 있는 회사의 외형과 역량을 더 강하게 키워 글로벌 경쟁의 대표주자로 내세우고 경쟁력 있는 장비업체를 중심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국내 장비업체의 소자 업체 의존도가 매우 높은만큼 현재 문제점만을 생각하고 소자업체가 국산장비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소자업체의 투자 인센티브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장비기업도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적극적 인수합병 등으로 선진업체와 한판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김형문 세메스 사장 hmoon.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