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에게조차 “남자친구 있니?”를 묻는다. 남자친구 없으면 바보취급 받는 사랑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요즘 커플들은 만난 지 100일을 큰 행사 치르듯 기념하고 어학연수 다녀온 사이에 짝이 바뀐단다. 사귄 지 1000일 정도는 돼야 내로라할 만한 기념이고, 군대 간 사이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예전과 비교하면 참 사랑주기가 짧아졌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진다. 소중히 가슴에 품고 가는 사랑은 답답한 짓이다. 남녀 간 사랑을 제외한 사랑은 사각지대로 밀렸다. 진정 로망이 아니면 노망인가.
C S 루이스는 ‘네가지 사랑’에서 사랑의 종류를 애정, 우정, 에로스, 자비로 구분한다.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의 내용과 방법에 따라 우정도 사랑이고 자비도 사랑인 것이다. 사랑의 경계선을 좀 더 넓게 잡고 깊게 그려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랑이 왜곡되고 위험해질 수 있다. 에로스적인 사랑만으로 한정지으면 사랑이 야릇해지고 살랑거리기만 한다. 남녀 간의 사랑만으로 귀결하면 누군가에겐 사랑이 취미가 되고 사치가 된다.
사랑은 사람에게 필수영양소다. 사랑 없으면 마음도 안 다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사랑을 빼버린 삶은 고독하고 피폐하다. “유럽의 개는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독을 지킨다”는 말처럼 사람에겐 ‘개를 사랑하는만큼의 사랑’조차도 생명을 부지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마음껏 사랑하자. 그리고 깊게 사랑하자. 사랑은 인스턴트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윽하게 우려낸 감잎차처럼 은근하고 다채로운 향을 풍기는 멋진 사랑을 하자. 누구도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서둘러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