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韓·中·日 과기 공동연구의 의미

[ET단상] 韓·中·日 과기 공동연구의 의미

 지난 5월 22일 도쿄에서 개최된 제2차 한·중·일 과학기술장관회의에서 3국 장관들은 매우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해냈다. 3국 공동연구의 개념과 절차를 담은 ‘한중일 공동연구 프레임워크’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한·중·일 3국은 과학기술은 물론이고 비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효율적인 공조체계를 구축하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일본과 중국은 외교적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고 한국은 중개자 역할을 맡으려 함으로써 이해 관계가 엇갈렸다. 그러다 보니 3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한·중·일 간의 협력은 실효성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 자체가 의문시돼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합의는 3국의 과학기술 협력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지속가능한 협력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동북아 역내 경제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정치적, 제도적 기반이 이미 어느 정도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말 동서냉전이 종식된 이후 1990년대 들어 한국은 소련 및 중국과 수교하기에 이르렀다. 또 세계적으로 확산된 지역주의와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ASEAN이나 ASEAN+3와 같은 협력체계를 구축하게 됐다. 지역주의에 바탕을 둔 이러한 아시아 국가들의 공조가 동북아 협력의 제도적 기반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국가들의 상호 협력관계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는 동북아 국가들이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을 도외시하고 오히려 선진국과의 경제 및 과학기술 협력에 치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국의 협력관계가 미진한 이유에는 구조적인 장애요인도 자리 잡고 있다. 이들 3국이 지정학적, 정치적 이유로 인해 역내 국가들과 외교적 단절을 겪어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접 국가들과 교류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길을 걸음으로써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과학기술 시스템에 공통점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한·중·일 각국은 각자 독특한 과학기술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이것이 3국의 과학기술 협력에서 구조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장애요인이 있음을 감안할 때, 한·중·일 관계를 지속적이며 의미 있게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협력기반을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협력의 시스템화가 이루어져야 한·중·일 3국은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공조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상호발전을 꾀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우리나라는 제1차 한·중·일 과학기술장관회의(2007년 1월 12일·서울)에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과학기술 협력체계 구축방안을 제안해 합의를 도출해냈다. 이에 따라 이번 제2차 한·중·일 과학기술장관회의에서 3국 장관들은 공동연구의 선정, 예산배정, 평가절차 등 추진 프레임워크에 합의함으로써 보다 진전된 구조적 협력기반을 마련했다.

 경제공동체 구성에 성공한 유럽연합도 현재의 과학기술협력 단계에 이르기까지 4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중·일 역시 실질적인 과학기술 협력에 도달하기까지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실질적 과학기술 협력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이번 3국의 공동연구 프레임워크 합의는 결코 의미가 작다고 할 수 없다. 이번 합의를 기반으로 3국이 보다 진전되고 다양한 과학기술 협력 활동을 추진함으로써 동북아시아 공동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

 임기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 kchlim@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