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대한민국의 ‘생쇼’

[데스크라인] 대한민국의 ‘생쇼’

 “사업(事業)은 사업(死業)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악으로 버티지 않으면 서 있기조차 힘들다. 졸면 죽는다.” 사업실패로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모 사장이 한 말이다. ‘죽는 것도 운이 없다’는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4전 5기의 결말은 그래도 괜찮았다. 종업원 월급 밀리지 않고 처자식 밥 굶기지 않으니, 자살 실패의 위안을 그나마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요즘은 견디기 힘들다. 경제위기 속에 다함께 살아보자고 몇 안 되는 종업원 임금도 깎고, 각종 경비를 절약하는데도 답이 안 나온다. ‘죽기까지 결심했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축 처진 어깨의 직원들이 눈에 밟힌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직원들은 퇴출당할 날짜를 머릿속으로 세어가며 한숨만 지을 뿐이다. 회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기에 하소연도 못한다.

 “회사 문을 닫으면 닫았지, 같이 고생한 사람들을 쫓아낼 수 없다”는 사장도 막상 정규직 전환에는 말문이 막힌다. 뻔한 매출에 정규직 직원들 뒷바라지하면, 차라리 문 닫는 게 나은 형편이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봉투 붙이면서 먹고살던 때가 좋았다”는 사장은 “그때는 속이라도 편했다”고 씁쓸해했다.

 전봇대부터 뽑겠다고 호기차게 나섰던 현 정부가 애꿎은 서민들의 생니부터 먼저 뽑았다. 전 정권의 과오라고 시위하듯, 실업 현장을 방문하는 여당 의원들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이 없으면 후에 더 큰 화를 부른다며 맞서는 야당의원들의 대결도 만만치 않다. 그 사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비정규직 서민들만 배를 곯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다.

 제대로 된 법을 만들라고 뽑아준 의원들은 당리당략에만 몰두한다. 실업현장을 가든, 근원적 해결책을 찾는다고 맞서든, 고용의 초조함에 갇혀 있는 이들의 마음을 알 리 없다. ‘무식하면 용감한’ 아마추어적 정치의 결말이 얼마나 참혹하지 보여주고 있다. 중범죄자도 먼저 살려 놓고 죄를 묻는 것이 순리다. 하물며 품 팔아 나라살림의 밑둥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벌을 내리는 것은 실책(失策)에 앞서 범죄행위다.

 세상에 임시직, 시간제 근무하는 비정규직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먹고살기 힘들어 쥐꼬리 월급에 자존심 굽혀가며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릇이다. 똑같이 일하고 정규직의 절반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는다면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논리다. 당장의 실업사태를 염두에 두지 않고 돌발성 인기몰이에만 급급한다면 ‘정치’라는 허울이 한없이 초라해질 뿐이다. 자국민을 법으로 실업자로 만드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 정치의 임계점에서 보는 ‘생쇼’다.

 국민의 의식주부터 먼저 챙기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고 끝이다. 이념도 사상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목소리 높여 외치는 녹색성장도 남들보다 더 잘살아보자고 시작한 구호다. 하지만 현실은 배고프다. 내일 잔칫상에서 잘 먹자고 오늘 굶으면 탈 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야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못해주는 중소기업 사장의 아픈 마음을 모르고, 포퓰리즘에 영합한 목소리로 의사봉을 두드렸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당장 오늘 내일이 걱정되는 수많은 비정규직원의 아우성이 너무 크다.

이경우부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