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클루언은 특별한 소개가 필요치 않은 널리 알려진 미디어 학자다. 그는 미디어를 단순한 소통의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매체의 특징이 소통의 방식뿐 아니라 생각과 사회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매체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물론이고 사회제도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의 주장을 현실로 확인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 두 매체는 오랫동안 전파를 매개로 한다는 점 외에 사회·문화·기술적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규제의 철학·방식도 달랐다. 그러나 기술 발달로 성격을 달리했던 두 매체 간의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결국 통합 정책기구를 탄생시켰다.
1994년 정보통신부의 출범은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였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변화였다면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은 정보화 이후 융합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제도적 변신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출범 이래 방송통신위원회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통신정책과 방송정책은 성격이 달라 위원회 구조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과 위원회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FCC와 같이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위원회 제도를 운용해 왔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사례가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제도다. 또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개선의 여지가 있으므로 어떤 문제제기도 소홀히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동시에 그 같은 문제제기의 답을 찾기 위해서도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첫 번째 질문은 과연 통신정책은 의사결정 과정을 차별화해야 할 정도로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른가다. 방송과 통신 정책이 동일한 의사결정의 과정 틀 안에서 논의되는 것이 과거와 다른 방식이라 할지라도 융합을 논의하는 마당에 매체를 구분해 의사결정 과정을 차별화하는 접근이 적절한 것인지 꼼꼼히 짚어볼 문제다. 융합의 원리는 차별화가 아니라 수렴이 아니던가. 융합의 차원을 떠나서도 방송과 통신은 공히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다루고 그 결과가 이해당사자들의 유·불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단지 충돌하는 이해의 내용이 방송은 이념적 가치와 관련된 것이고, 이해당사자가 주로 가치지향성을 지닌 집단이라면, 통신은 충돌하는 이해의 내용이 경제적 가치와 관련된 것이고, 이해 당사자가 경제집단이란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방송정책은 정치의 영역이고 통신정책은 비정치의 영역이니 정책 결정 과정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 번째 질문은 위원회 제도의 ‘비효율성’이 과연 어느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다. 위원회란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주장과 견해 간에 견제와 균형의 기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 과정에서 효율성보다는 합리성이 강조된다.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다루는 정책분야일수록 효율성보다는 합리성이 중요하다. 위원회란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일사불란한 효율적’ 의사결정의 함정인 ‘집단사고’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 ‘효율적’ 제도기도 하다.
정책은 옳고 그름의 문제기보다는 선택의 문제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장기적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정책기관의 신뢰를 결정한다. 의사결정 구조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성격과 운영에 관한 문제제기를 접하며 “오늘의 문제를 어제의 방식으로 풀려하지 말라”는 매클루언의 충고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경자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kaylee@kc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