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가는 반찬가게가 있다. 막 부쳐 먹어야 제맛이라며 따끈한 호박전을 챙겨주고 식혜가 잘 익었으니 맛이라도 보라고 한 컵을 내준다. 대형할인점보다 싸지 않아도 작은 반찬가게를 찾게 되는 이유는 나를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그 따스함 때문이다. 중량표시까지 확실하게 꼭꼭 싼 랩포장보다는 가늠할 수 없는 한주먹의 ‘덤’이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얼마전 글로벌 브랜드 회사에 강의를 나갔다. 그곳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고객에게는 다른 어느 나라에 없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빠르기로도 유명하지만 까다롭기로도 유명한 한국고객에게 사은품이나 할인 없는 매정한 거래는 낯설다. 그래서 글로벌 브랜드는 전 세계에 유일하게 사은품이나 샘플 등을 제공하기 위해 추가 예산을 배정한단다. ‘덤’은 합리적이지 않지만 온정적이기는 하다. 어쩌면 단골을 기억하고 하나라도 챙겨주는 한국의 ‘덤’ 문화가 원시적인 고객관계관리(CRM)의 모태일지 모른다.
한국 고객은 체면이 중요해서 차별을 증오한다. 20%의 VIP 고객이 80%의 수익을 좌우하는 만큼 특별 관리해야 하지만 이 또한 조심스럽고 섬세해야 한다. ‘돈이 되는 고객을 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서양 문화와는 달리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한국의 문화는 자칫 홀대받은 고객의 앙심이 더 큰 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구를 안겨준다. 키워주지는 못해도 매장시킬 수는 있고, 밀어줄 수는 없어도 밟아 버릴 수는 있다는 협박이 통하는 곳이 한국이다. ‘돈 없는 고객은 나가라’는 자세보다 ‘돈보다는 사람이 좋아 챙겨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구름에 비 고여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느 고객이 폭탄이 될지 알 수 없다. 가격표보다 사람의 진심을 먼저 살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