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사업자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신규 가입자가 더 이상 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정적 수입원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단말기 보조금을 조금이라도 더 지급하고, 매력적인 이동통신 단말기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를 유치하려고 하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영업경쟁은 투자 대비 효과를 고려한 합리적인 시장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과거 정통부 시절에 많이 보아 왔던 사업자들이 스스로 경쟁을 자제하는 움직임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출혈 경쟁이 제 살 깎아 먹기인 만큼 적당히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소감을 토로하는 것을 넘어서 지난 1일 방송통신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는 사업자들 스스로는 자율규제가 안 되니 규제당국이 규제해 달라는 해괴한 호소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지난 3일에는 3개월 이내에는 번호이동을 못하게 하기로 이통사업자들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또 8일에는 방통위가 나서서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가구별이나 성별로 차별화하는 행위는 이용자 차별에 해당하므로 위법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소모적 마케팅 방지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방통위는 회계제도를 개선해 사업자들이 보조금을 조성,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규제기관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까지 표방했다.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경쟁과정에서 영업비가 많이 지출되니 이를 많이 지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통신 규제 당국은 사업자들의 영업행위를 감시하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사업자들의 영업행위 자유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이들이 불공정 거래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야 할 일이다. 이통 사업자의 자유로운 영업행위를 규제하려다 보니, ‘이용자 이익저해행위’ 혹은 ‘이용자 차별행위’라는 해괴한 과거의 규제논리가 재등장한다.
과거 통신위원회는 이러한 규제논리를 들어 케이블TV 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 요금을 할인하는 것도 금지했으며, 고객이 이동전화를 집에서 사용할 때 대폭 할인해 주는 상품인 LG텔레콤의 기분존 요금제도에 시정명령을 내린 적도 있다. 통신규제당국이 ‘이용자 이익저해’라든지 ‘이용자 차별’을 이야기할 때는 절대 이용자들에게 할인혜택을 주지 말라고 할 때 뿐이었다. 앞서 말한 기분존 요금제에는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염매’(과도하게 싸게 판매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판정까지 내리기도 했다.
지금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장 지배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요금을 약관승인 때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 규제권한은 본질적으로 독점 지배 사업자의 요금이 시장에서 경쟁수준의 요금을 초과해 독점요금 수준인지 아닌지를 평가, 필요하다면 요금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런데 과거 정통부 시절부터 지금 방송통신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지난 2004년 9월을 마지막으로 규제당국은 단 한 번도 현재의 이동통신 요금 수준의 적정성을 평가한 적이 없었고 인하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후발 이통사업자들은 SK텔레콤의 요금승인이 난 이후에 그보다 약간 싼 요금을 적용하면 그만인데 스스로 요금을 내려야 할 이유가 없다.
사업자들이 나서서 영업경쟁을 자제하자고 하는 것을 우리는 ‘담합’이라고 부른다. 사업자들이 담합을 하는 이유는 경쟁해서 일어나는 매출액 감소를 막기 위해서다. 규제당국이 단말기 보조금을 자제하라는 것은 영업비 지출을 줄여 기업의 수익을 늘리라는 말이다. 바꿔 말해 왜 소비자에게 기업의 이익을 너무 많이 나눠주냐고 질책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방송통신위원회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ehch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