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이 우리나라에 2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할 예정이라 하고 이를 기반으로 4세대 이동통신 LTE 기술 개발에 협력할 것이라 한다. 외국 기업의 국내 기술 투자는 당연히 환영할 사항이고 외자유치는 현 정권의 주요 정책사항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동안 국내에서 추진해 온 와이브로 사업 전망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와이브로는 이른바 휴대인터넷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이동 중에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서 고정성 무선 인터넷에 이동 기능을 추가해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이다. 6년 전 와이브로 개발을 결정할 때, LTE는 희미한 윤곽만 있었다. 세계 최초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20만 가입자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인허가 과정에서 2년여를 만지작거렸고 사업자 의지도 분명치 않아 국내 시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기술 개발을 선도했던 삼성전자가 애초에는 해외시장 개척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으나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사업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렸다.
여기서 우리의 CDMA 성공사를 되뇌어 보자. 15년 전 우리나라 CDMA 성공의 배후에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확고한 비전과 의지가 있었다. 실험 통화 실적밖에 없었던 CDMA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할 때, KT를 비롯한 많은 이해 당사자가 GSM 대세론을 앞세워 반대했다. 물론 GSM의 과도한 기술료 요구도 있었지만 당시 벤처에 불과했던 퀄컴과 CDMA 상용화 협력 사업을 결정한 것은 우리나라 통신 정책을 이끈 기술관료들의 리더십에 따른 결단이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를 성공시킨 국내 기술력은 그보다 앞서 상식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정부가 추진한 전자교환기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것이었다. 이후, 퀄컴은 단순히 원천기술 제공을 넘어 막강한 미국의 영향력을 업고 국제적으로 CDMA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일본·중국·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호주 등 각국이 CDMA 표준을 택하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가입자 기반을 넓히고 시장 경쟁력을 높인 공은 충분히 인정해야 마땅하다.
기술만 가지고 안 되는 것이 통신서비스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통신시장에서 유난히도 ‘극성이고 별난’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했고 최상의 품질이 아니면 당장 경쟁사로 옮겨 갔다. 사업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딴 나라에서는 그런 서비스를 쓰지 않는다’거나 ‘선진국에서 이 정도 품질이면 만족해 한다’고 설득할 겨를도 없이 뛰었다. 이를 위해 모토로라나 에릭슨 같이 세계시장만을 상대로 한 공급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요를 국내 벤더들이 훌륭히, 그것도 신속히 소화해 냈던 것이다. 경영자의 과감한 결단력, 국내의 기술력과 제조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와이브로에는 과연 정부의 지도력, 세계를 주름잡을 전도사, 그리고 경쟁과 모험을 불사하는 사업자들이 있는가. 지지부진 세월을 허송한 이 시점에 사업자들은 아직도 어정쩡한 자세로 눈치만 보고 있다. 4세대 이동통신을 향한 정부의 의지가 무엇인지 우왕좌왕하는 업계에 정부는 와이브로 투자 약속을 이행하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투자 촉진에는 규제 완화보다 불확실성 제거가 더 효과적인 약이다. 와이브로를 향한 정부의 의지는 과연 무엇인가. 만약 LTE를 통해 4세대로 진화하는 것이 정부가 갖고 있는 비전이라면 서둘러 와이브로의 위치선정을 명확히 해주고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업계의 혼란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국회의원 yklee@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