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전쟁 후폭풍 `민영 미디어렙`

‘미디어 전쟁’은 여전히 핵폭탄을 남겨두고 있다. 진통 끝에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이 통과됐지만, 미디어시장의 현실적인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민영 미디어렙 도입과 공영 및 민영방송의 재편 문제가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이중 민영 미디어렙은 방송광고 요금이 자율화되고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을 하는 시장경쟁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방송시장의 실질적인 구조개편을 가져올 단초가 된다. 이는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방송광고 판매대행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2월 말까지 코바코 해체 뒤 최소 1개 이상의 민영 미디어렙을 만들어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케 하면서 지역·종교방송 등 취약 매체에 대해서는 자구노력과 연계해 지원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방송광고 독점체제 해체=1981년 설립된 코바코는 지난 28년동안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판매 대행을 독점해왔다. 코바코는 KBS, MBC, SBS 등 메이저 방송사의 광고시간과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은 지역민방 및 종교방송의 광고를 끼워파는 식으로 사실상 소규모 지역민방을 지원해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방송광고 독점에 따른 요금통제 때문에 방송광고 가치가 저평가되고 군소방송사의 광고 끼워팔기로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을 견지해왔다. 광고시장의 ‘파이’를 키워 방송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결국 헌재의 결정과 맞물려 방송광고 시장의 독점체제 해체와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특히 코바코 해체에 따라 민영 미디어렙이 허용되고 광고 판매가 완전경쟁시장이 되면 일단 미디어렙 간의 치열한 영업경쟁 속에 광고시장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는 예상된다. 하지만 광고가 시청률 높은 메이저 방송사에 몰리면서 코바코가 정부를 대신해 지역.군소.종교방송 등을 지원해오던 기능이 사라지고 이들의 생존이 어렵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방송사들이 프로그램마다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시청률 경쟁에 몰입하면서 방송시장이 상업성과 선정에 물들고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의 입지는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미디어렙 도입 방향은=미디어렙 시장이 ‘1공영 1민영’의 제한경쟁 체제로 갈지, ‘다민영’의 완전 경쟁 체제로 갈지는 아직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

하지만 광고시장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과도기적 차원에서 코바코를 기반으로 한 ‘1공영’ 미디어렙을 둬야 한다는데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26일 기자회견에서 “미디어렙을 몇 개로 할지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데 이는 과도기적 체제가 될 것”이라며 “하나, 또는 두개, 많으면 세 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지난 5월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업자의 범위를 방통위가 허가한 사업자로 확대하고 KBS와 EBS의 방송광고판매대행을 위한 한국방송광고대행공사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여당은 ‘1공영 다민영’ 체제를 상정하고 있는 한 의원 발의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본격화할 태세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허가제를 기본으로 한 ‘1공영 1민영’의 제한 경쟁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한 의원의 법안은 그동안 미디어법 논의에 막혀 현재 상임위에 상정조차 안된 상태지만 향후 미디어정국을 달굴 핵심 현안이 될 전망이다. 미디어렙 도입 방향에 관한 문제는 방송사별로도 입장이 엇갈린다. KBS는 허가제를 기본으로 한 ‘1공영 1민영’ 체제, SBS는 등록제를 기본으로 한 ‘1공영 다민영’ 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이들 방송사는 또 미디어렙 소유구조에 대해서도 방송사와 대기업, 광고기획사 지분 참여를 일정 비율로 제한할 것과 방송사의 지분 참여를 51% 이상으로 보장하되 대기업과 광고기획사, 공적재원의 지분참여는 금지할 것을 주장하는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한 의원의 법안은 SBS 뿐 아니라 MBC도 각각 지분의 51%를 소유한 자회사로서의 미디어렙을 등장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는 방송광고 시장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공영과 민영방송의 재편 문제에 대한 논의로 전개될 전망이다.

◇공·민영 체제 선택 종용=‘1공영 다민영’ 체제를 주창하는 정부 여당의 미디어정책은 MBC에 공영과 민영 중 한 체제를 선택토록 종용하는 상황이 전개될 전망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현행 방송법상의 한국방송공사 조항과 한국교육방송법을 통합한 공영방송법 제정 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현행 KBS·EBS 이사회를 대신해 공영방송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영방송은 광고 수입이 전체 재원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하면서 나머지 80%는 수신료로 운영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BS와 EBS를 공영방송의 범주로 묶어놓으면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MBC에 대해서는 민영화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MBC는 공익법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분 70%를 소유하는 공영방송 체제지만 총수익 가운데 광고수익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광고에 의존하는 상업방송이기도 하다. 최시중 위원장은 “MBC 문제에 대해서는 작년 방송문화진흥회 20주년 기념식 때 공영이냐, 민영이냐, 공민영이냐 정명(正名)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게 있는데 지금도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8월 중에 새로 구성될 방문진 이사회가 MBC 노사와 함께 MBC 민영화 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대략적인 로드맵도 제시했다. 더불어 방송광고에 의존하는 KBS2 채널 역시 선택을 종용받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여부도 관건이 될 전망이다. 최 위원장은 “KBS가 정치권력에 휘둘리거나 정치적 향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체제가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디어 입법전쟁’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후속으로 이어질 이런 미디어 현안들은 올 한해를 미디어정국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