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와 정보 보안 그리고 소프트웨어 품질’. 쉽게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에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정수기는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부 특수 계층에서만 사용하는 제품이었다. 서울올림픽 등으로 외국 생수가 국내에 소개되고,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깨끗한 물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수기는 차츰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끓여 먹는 물로도 충분하던 우리의 생활 습관이, 비용이 들더라도 좀 더 안전한 정수기를 거친 물로 바뀌기까지는 깨끗한 물에 대한 인식, 문화 수준 변화가 그 시작이며 핵심이었다.
인터넷 정보 보안 역시 1990년대 말부터 그 중요성이 사회에 알려지게 됐지만, 정보 보안에의 실질 투자는 2003년의 1·25 인터넷 대란, 가끔씩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주요 기관 해킹 사건 등을 계기로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보 보안 투자는 그 효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지금까지도 무사히 지내왔다는 안도감과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 같은 유아적 사고까지 더해지면 투자는 더욱 어렵게 된다. 우리의 정보 보안 인식 변화에 문화 수준 향상이 요구되는 이유다.
1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발전한 정보 보안 수준은 정수기 확산처럼 높아졌다. 하지만 이번 분산서비스거부(DDoS)공격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 보호 수준은 아직 선진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더 늦기 전에 더욱 강도 높고 지속적인 인식 변화와 정보 보호 문화 수준 향상이 요구된다.
그리고 SW 품질이다. 세계적으로 SW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SW를 보는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SW가 없다는 현실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고 왜곡된 시장 구조, 낮은 개발 능력 등 많은 이유가 거론되지만 그보다 앞서 SW 문화 수준이 그만큼밖에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모임에선가 “반도체에는 몇 조원씩 투자했는데 과연 우리가 SW에 그만한 투자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박수라도 보내고 싶을 만큼 공감되는 내용이다. SW를 경시하고 SW에는 작은 투자도 아까워하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SW가 성장할 수 있겠는가.
SW를 이용한 높은 부가가치 창조의 핵심은 창의력과 스피드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우리 민족은 유전적으로 이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이미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창의력과 스피드로 개발한 제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고객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장인 정신과 최고가 되기 위한 길고도 치열한 마지막 5%의 산고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즉 SW 투자의 핵심은 곧 그 품질에의 투자다. 우리의 SW에 대한 문화 수준 향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아무도 쓸 것 같지 않던 정수기와 비데 혹은 내비게이터가 자연스러운 문화가 된 것처럼, 세계 최고의 SW를 만들려는 투자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개발 일정도 바쁜데 무슨 품질 보증이냐”가 아니라 생산된 모든 휴대폰을 불태워 버리는 처절한 장인 정신과 투자가 SW 개발에서도 이루어질 때, 우리의 SW 산업도 세계를 제패하리라 확신한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인 국민 모두의 절대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때다.
조규진 파수닷컴 PA사업본부장 상무이사·공학박사 kyucho@fas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