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전기차를 둘러싼 오해들

[ET단상] 전기차를 둘러싼 오해들

 세계 자동차 시장이 대변혁을 맞고 있다. 차량 동력이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뀌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전기차를 둘러싼 여러 오해와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흔히 전기차가 대중화돼도 기존 완성차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전기차는 대량 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차로 기존 완성차업체의 대량 생산시스템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기존 휘발유차의 부품 수 3만개에 비해 전기차는 부품 수가 1만개 수준이다. 복잡한 엔진과 트랜스미션, 연료계통이 모터와 배터리로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부품 수가 적어지면 당연히 가격도 낮아진다. 자동차 개발 시 투입되는 비용의 절감은 획기적이다. 플랫폼(차대)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과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충돌테스트, 설계에 투입되는 비용도 크게 줄었다. 따라서 미래의 전기차 생산은 대단한 기술력이나 대규모 생산라인이 필요 없어진다. 자동차 제조비용이 낮아지면 완성차업체가 지금처럼 높은 이윤을 창출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즉 완성차 조립보다는 핵심부품 즉 모터와 배터리를 전 세계 조립공장에 공급하는 편이 이익 면에서 더 좋다.

많은 완성차업체가 섀시 공급을 새로운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프로톤홀딩사는 부족한 경쟁력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자동차업체들에 섀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도요타자동차가 전기차를 개발하려는 자국 벤처기업들에 섀시를 무제한 공급하는 이유는 시스템 메이커로의 전환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중국의 배터리업체였던 BYD가 세계적 전기차 회사로 등장하는 사례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산요 등 일본의 배터리업체들도 전기자동차 생산에 뛰어든다.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기존의 완성차 조립업체에서 핵심부품업체로 이전됨을 뜻한다.

소비자들의 기대와 달리 전기자동차는 그리 편리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전기차를 지금 휘발유나 디젤차와 비교해서 안 산다는 사람들은 비교기준이 잘못됐다. 전기차는 몇 시간 동안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기존 자동차의 급유 시간 5분에 비하면 정말 길다. 한 번 충전 시 평균 주행거리도 100㎞ 남짓이다. 배터리를 적재하는 공간이 커서 짐도 많이 실을 수 없다. 온 가족이 다 타기도 어렵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전기자동차를 타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구환경을 유지하면서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다른 대안이 없다. 앞으로 전기자동차 이용자들은 슬로 시티(느리게 살기) 운동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을 정도로 충전시간과 짧은 주행거리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보답으로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 자동차를 구매할 것이다.

전기자동차의 불편함과 강점들을 잘 살펴보면 결국 소비자의 욕구를 누가 만족시키는지에 따라 시장판도가 정해질 전망이다. 전기자동차 제조는 이미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어떤 전기차를 선택할 것인가. 많은 전문가는 이제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의 주역은 노년층과 경제력 있는 여성이다. 이들은 빠른 자동차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개성을 나타낼 커스터마이징된 전기차를 원한다. 2012년께면 세계 친환경 자동차시장의 판도가 결정난다. 미국과 일본, 독일, 중국 등 각국이 비장의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는 국경도 없다. 우리나라에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첨단부품업체가 다수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이 하나둘 해외에 매각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한국에 미련이 별로 없다. 완성차 위주로 짜여진 부품업계의 완고한 먹이사슬에 좌절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친환경 자동차 지원은 오로지 기존 완성차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주 일본 미쓰비시는 이미 상용 전기차를 선보였다.

최상열 넥스텔리전스 신사업연구소장 saintychoi@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