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표준원은 지난달 9일 자료를 내고 애플이 국내에서 배터리 사고가 계속 나는 아이팟 나노 1세대 모델을 자진 리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술표준원은 그 근거로 애플이 “사용 중인 아이팟 나노 배터리에서 실제로 과열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열을 우려하는 고객도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전해왔다며 “이는 애플이 기표원의 자진 리콜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리콜은 시행되지 않는다. 굳이 적극적인 회수가 수반되는 리콜이 아니더라도 문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알리고 서비스를 받게 유도하는 조치마저 없다. 권고를 받아들이고도 이행하지 않는 애플의 문제일까, 리콜이 아닌데도 리콜이라고 한 기표원이 문제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기표원이 문제다. 먼저 애플은 리콜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리콜은 제품의 결함이 인정돼야 성립한다. 그런데 애플 아이팟 나노 1세대는 기표원 덕에 아무 문제가 없는 제품으로 공인을 받았다. 기표원의 자체 테스트에서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표원이 리콜이란 단어를 썼다가 지난달 22일 변호사를 대동한 애플의 항의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이 수용했다고 한 배터리 교체 서비스는 이미 작년 8월부터 시행해온 AS 정책이다. 즉, 애플이 기표원의 자진 리콜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기존 방침을 재차 확인한 것 뿐이다. 그런데도 기표원은 기존 AS 정책을 마치 새롭게 이끌어낸 것처럼 발표하고 리콜이란 단어를 사용해 혼란만 가중시켰다. 무심코 했든, 의도적이었든 망신살이 뻗친 행동이다.
중요한 것은 리콜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소비자의 불안감을 덜어줄 실질적인 조치다. 일본 정부가 잇따르는 애플 배터리 사고로 소비자 주의를 공표한 일을 참고할 만하다. 당국과 해당 기업이 뜸들이는 사이 배터리 사고 제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