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 다소비 4대 가전 제품에 개별소비세 부과를 앞두고 품목, 세율 및 적용시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업계의 강력한 반발과 장기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 진작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14일 에너지 효율이 낮은 제품에 개별소비세(개소세)를 부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저효율 TV와 냉장고 등 백색가전이 우선 적용 대상이며 시기는 이르면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었다. 개소세는 사치품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관련 제품에 세금을 매기는 취지로 도입한 과거 특별소비세의 다른 이름이다.
정부가 주요 가전에 개소세를 부과하려는 목적은 세수 부족 때문이다. 과세는 정부 고유 업무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국고가 넉넉해야 사회간접자본에 투자도 할 수 있고 어려운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다. 문제는 가전 개소세 부과가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종부세와 법인세를 인하했을 뿐 아니라 10년 이상된 노후차를 신차로 교체하면 취득·등록세를 최대 70%까지 감면하겠다며 소비를 부추긴 바 있다. 그런 정부가 고급차의 10분의 1 밖에 안 되는 가격인 이들 가전에 개소세를 부과한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업계의 반대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전자산업진흥회는 “4대 가전이 혼수품이 됐을 정도로 이미 생필품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개소세 부과는 현실을 모르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현 정부가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와는 정면 배치되는 일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미국발 경기 침체로 그 역대 어느 정부때 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는 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관련 업계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부터 기운 빠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