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통신비 지출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통신이 종합문화 서비스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는 패턴을 고려해야 한다.” (2009년 7월 9일)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통신요금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이 값 싸고 질 좋은 방송통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이동통신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2009년 8월 14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한 달 간격으로 내놓은 통신요금 견해다. 같은 사안을 놓고 상반되는 뉘앙스가 풍기는 두 발언에는 최근 가열되고 있는 ‘통신비 논란’에 정부의 딜레마가 그대로 녹아 있다.
‘단기 처방이냐 중장기 대책이냐’ ‘소비자 혜택이냐 산업 육성이냐’ ‘인위적 인하냐 정책적 인하 유도냐’ 등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요금 수준부터 재점검해야=OECD 보고서가 공개된 지난 12일 신용섭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요금 수준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할 방법을 개발해 시장 경쟁에 의해 요금 인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분석자료의 신빙성 논란과 소비자단체들의 요금 인하 압박, 방통위의 역할론 등이 거세게 일었던 당시, 정책 책임자로서 모든 요소를 고려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답변인 셈이다.
통신요금은 국가별 시장 환경과 이용 패턴 등이 서로 달라 요금 수준의 정확한 측정은 요원할 수 있다. 때문에 ‘싸다’ ‘비싸다’라는 단순 비교보다는 통신이 갖는 소비자 물가로서의 의미와 산업적 의미를 고려한 요금 수준의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치적 목표는 지양해야=이번 정부는 인수위 시절 ‘통신비 20% 절감’을 공약했다. 선심성 공약이라는 논란을 떠나 이 공약이 무조건 사업자의 목을 졸라 요금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정책 당사자들의 생각이다.
시장 경쟁 활성화, 투자를 통한 기술 개발 및 타 산업과의 융합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그만큼 소비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과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는 앞뒤는 다 짤리고 ‘20% 인하’라는 수치만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통신업계의 소극적 투자 행보도 일조했다. 통신요금 정책 속에는 사업자들의 차세대 투자 여건에 대한 고려가 포함돼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투자는 서비스 질의 향상 등을 동반해 통신의 정책적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이통 3사의 투자 규모는 감가상각 상계에 따른 수익률 제고에도 불구하고 매년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이익에만 연연한다는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7월 관훈토론회 자리에서 “통신비 인하를 추진해 우리나라 평균 통신비를 지난해 13만8000원에서 올해는 13만4000원으로 4000원가량 줄였다”며 “주로 음성통화가 중심인 해외와 달리 영상통화·문자·교육 등을 폭넓게 이용하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 정도나마 통신비 부담이 줄어든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이 같은 견해는 통신비가 단순한 요금정책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적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단순한 요금 인하’라는 수치적 목표에만 연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된다.
◇시장 경쟁으로 체질적 요금 인하 고민해야=일각에서는 이동통신요금 인하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규제 완화의 시계 바늘을 되돌리자는 것이어서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그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미국·일본 등에는 요금 강제 인하 기능이 정부에 남아 있어 가능하지만, 한국은 이미 2007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이 역할을 없애고 시장 경쟁 중심의 정책으로 요금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본료를 1000원씩 낮춰도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천억원의 매출이 떨어지지만 소비자의 요금 인하 체감도는 그리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도 저소득층 요금 감면과 같이 특수분야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하고, 일반 시장에서는 사업자 간 경쟁으로 요금을 낮추는 정책기조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만약 현재의 통신요금 수준이 높다면 이는 결국 정부 경쟁정책의 실패인 셈이다. 정부는 이미 경쟁 촉진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필요하면 제4 통신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경쟁을 촉발시키는 방안도 정부로서는 고려해 볼 수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