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미 드라마 시리즈 ‘CSI’처럼 일 할 수 있다면......

 미국 드라마 CSI의 한 장면. 널찍하고 쾌적한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심각한 표정으로 시험관을 흔들어 측정 설비에 넣는다. 잠깐 콧노래를 부르며 1∼2분 기다리면 그 장비는 곧 멋진 분석데이터를 화면 가득 쏟아놓는다.

 과학적 분석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CSI 드라마가 원망스러운 때가 많다. 기업 분석 연구원과 수사관이 동일한 업무를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실험실에서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첫째, 실험실은 드라마처럼 쾌적하지 않다. 대부분의 분석장비들은 한 실험실에 여러 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연구원 대다수는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한다. 시료를 분석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전 처리가 노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둘째, 분석설비를 통해 1∼2분 내에 데이터를 얻고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때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거나 지문이나 DNA와 같이 단 하나의 매치(match)만이 가능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변 동료들은 CSI 드라마에 분통을 터뜨린다. 분석 의뢰자들이 드라마 CSI에서처럼 곧 결과가 나오는 줄 알고 연구원들을 닦달하기 때문이다. 제품 불량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유럽·아시아 각국에서 제품에 사용되는 각종 첨가제들을 유해물질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고객에 우리 제품이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인 성적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분석그룹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미국과 유럽의 권위 있는 기관에서 정확하고 숙련된 결과를 내는 실험실이라는 공인 인정을 최근 받았다. 의뢰자의 닦달을 받는 것이 조금 불편해도 제품의 과거를 캐며 분석을 통해 하나하나 정보를 얻어 스토리를 만들고 상황에 대응하는 이 일이 재미있다. 또 그 제품의 과거를 통해 회사에 신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하게 돼 보람이 크다.

 신은미 LS전선 연구소 분석기술그룹장 exs56@lscab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