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금융산업의 중요성이 한층 더해졌다. 대부분의 녹색산업은 성장 초기단계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금융 분야의 뒷받침이 필요하고, 특히 담보 부담이 없는 주식·채권 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투자가 중요해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달 28일 ‘일본의 환경대국 진입을 가로막는 3대 복병’ 보고서에서 환경강국 일본의 그린산업 추락 이유 중 하나를 벤처투자 미흡으로 꼽고 있다. 일본의 녹색사업에 대기업이 쏠리면서 벤처기업을 통한 녹색 신기술 개발이 미미했던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도 일본 벤처캐피털 에너지 관련 투자액은 같은 기간 미국의 4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과 달리 미국 등 서구에서는 대기업 기술과 함께 벤처기술 투자도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IT산업·제조업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도 벤처캐피털의 녹색산업 투자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벤처투자 업계에서 30여년간 일해 온 나는 우리나라 미래 성장 동력이자 세계적 붐을 타고 있는 녹색산업 분야의 벤처투자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 정부는 정책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해 민간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녹색기술 중소벤처기업 인증기준 등 관련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녹색산업의 중복투자와 버블 우려를 사전에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민간 벤처캐피털을 활용한 선택과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은 기업에 정부의 기술개발 출연금을 매칭 지원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우수 기업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셋째, 기술성 평가를 정부가 하고 사업성 평가를 민간의 벤처캐피털에 맡김으로써 정부 정책지원 사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위해 기술성 평가를 예전 산업기술평가원이 주관하고 사업성 평가를 민간의 벤처캐피털이 수행함으로써 정책 지원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넷째, 모태펀드를 활용한 녹색성장펀드를 조성함으로써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재원을 공급하고, 투자관리전문기관을 지정함으로써 녹색성장펀드의 사후관리와 체계적인 지원을 도모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녹색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나라들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정부투자로 부족하다. 모태펀드는 정부의 종자돈(시드머니)를 통해 민간의 자금을 끌어오는 역할을 함으로써 녹색성장펀드 투자재원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 될 수 있다. 특히 향후 성공기업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한 투자금 회수로 재투자 재원을 확보함으로써, 녹색성장산업 육성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기타 녹색산업의 경제규모 및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전용펀드 외에도 다양한 펀드에 출자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1990년대 말 IT산업 발전은 버블도 낳았지만 IT강국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듯이 녹색산업도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임에 틀림없다.
투자기간이 긴 녹색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현 시점에서 대규모 투자는 경기회복 시점에 국가 성장 동력의 역할을 할 수 있어 경기침체의 저점을 지난 지금 녹색산업 분야에 대한 벤처투자는 절실하다.
김형기 한국벤처투자 대표 hkkim@k-v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