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오늘날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컴퓨터 제품과 서비스들…. 하지만 그들은 노병이 그렇듯 죽지 않았다. 비록 과거의 명성은 첨단 신제품과 기술에 밀려 변방에 자리 잡고 있거나 잊혀졌지만 일부 광적인 팬은 그들이 용도폐기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업은 사라지고 오랜 기간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을 지키고 있는 그들을 만나본다.
PC월드는 지난 197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명 기술제품 가운데 오늘에도 명맥을 유지하는 생존자(?)들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사이트·스토어’ 3개 범주로 나눠 살펴봤다.
◇하드웨어=1970년대 후반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PC를 보유한 가정에서 하나쯤 구비했을 법한 ‘도트(dot) 프린터’의 작동 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엡손FX-80, 파나소닉 KX-P1124와 같은 모델은 적잖은 소음에 매우 느린 속도를 냈다. 도트 프린터가 내건 슬로건은 ‘활자와 거의 같은 품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1990년대에 등장한 잉크젯과 레이저 프린터에 의해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났다. 그렇지만 도트 프린터는 여전히 사무기기 용품점인 오피스 디포에 존재한다. 수천페이지를 용지 충전 없이 소화할 수 있고 다양한 크기의 프린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형 사업장의 수요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까지 컴퓨터에 사용됐던 흑백 CRT모니터도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GUI)·멀티미디어·게임 등의 등장으로 찾아보기 힘든 품목이 됐다. 하지만 세계적인 PC업체 델은 여전히 이 흑백(단색) 모니터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마트의 전자현금 계산기와 문자 기반 애플리케이션 용품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e북 리더로도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IBM PC와 호환기종에 사용된 그래픽카드로 유명했던 ‘허큘리스(Hercules)’도 2004년 이후 생산이 중단됐지만 다른 컴퓨터 관련 기기나 액세서리 등에서 그 이름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라디오섁TRS-80, 오스본1, 캐이프로Ⅱ 등 초기 PC에 탑재된 8비트 프로세서 ‘Z80’도 여전히 악기나 교육용 기기, 사무용 기기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 1970년대 이후 대표적인 저장매체로 자리 잡았던 ‘플로피디스크’와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집(Zip) 디스크’도 여전히 생존 중이다.
또 1990년대 일정관리 기능으로 시작해 휴대형 컴퓨팅 기능까지 소화했던 개인휴대단말기(PDA)도 최근 스마트폰 열풍에 위축됐지만 다양한 활로를 모색 중이다. 1985년 홈PC의 개척자 코모도어가 선보인 ‘아미가(Amiga)’, 1992년 등장한 소니의 ‘미니디스크(MD), PC용 전화모뎀 ‘헤이즈(Hayes)’, 1990년대 초반 PC시장에서 주목받다가 오늘날 대만PC업체 에이서의 일부가 된 ‘팩커드 벨(Packard Bell)’ 등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거나 그 브랜드만큼은 유지되고 있는 것들로 꼽혔다.
◇소프트웨어=애슈턴이 지난 1980년 출시한 PC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디베이스(dBASE)’는 오늘날 ‘디베이스 플러스’라는 명칭으로 판매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세스’가 나오기 전까지 시장을 호령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데다 각종 소송에 에너지를 허비했다. 워킹그룹 등 기능은 현재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1994년 인터넷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Netscape)’도 많은 이들의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MS가 인터넷익스플로러(IE)를 윈도와 묶어 무료 배포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은 뒤 지난 1998년 AOL의 품에 안겼지만 결국 2007년 관련 사업을 중단했다. 현재 넷스케이프라는 이름은 AOL닷컴에서 로고로 만날 수 있는 수준이다.
1981년 IBM PC의 운용체계(OS)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MS도스(DOS)’는 그래픽 환경의 윈도95의 출시로 시장에서 잊혀지기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다수 PC 마니아들은 도스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MS는 여전히 MS도스6.22 다운로드 버전을 제공하고 있으며 소규모 영세업자들은 도스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프레드시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로터스(Lotus) 1-2-3’는 출시 초기부터 IBM PC용 킬러앱으로 주목받았다. 1990년대 중반 로터스 스마트 스위트와 MS 오피스의 치열한 경쟁을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MS에 밀리다 2002년판에서 업그레이드가 멈췄다. 스프레드시트를 포함한 IBM로터스심포니가 가장 최근 출시됐다.
고품질 문서 출력을 가능케 한 앨더스의 데스크톱용 출판 애플리케이션 ‘페이지메이커(Pagemaker)’도 워드프로세서와 쿼크익스프레스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으로 2004년 개발이 중단됐지만 현재 어도비 웹사이트에서는 499달러에 2002년판 페이지메이커7.0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버클리시스템스가 1989년 선보인 맥과 PC용 스크린세비어 ‘애프터다크(After Dark)’도 일본 인피니시스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한때 파워포인트를 능가하는 명성을 가졌던 ‘하버드그래픽스(Harvard Graphics)’도 영국 세리프에서 98버전이 판매되고 있다.
◇사이트·서비스·스토어
디지털이퀴프먼트(DEC)가 1995년 내놓은 인터넷 검색 엔진 ‘알타비스타(Altavista)’도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2000년 이후 컴팩, CMGI(오버추어의 전신), 야후 등에 넘어가며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더 이상 발전이 없이 사이트만 유지되고 있다.
1979년에 등장한 상업용 웹사이트 ‘컴퓨서브(Compuserve)’는 뉴스와 각종 정보들로 이름을 알렸지만 1990년 인터넷 공룡 AOL의 등장으로 왕좌를 내주고 물러났다. 1997년 AOL에 인수된 뒤 한 부문으로서 브랜드가 유지되고 있다.
1990년 IBM과 시어스 뢰벅이 공동 설립한 유명 인터넷 사이트 ‘프로디지(Prodigy)’는 멕시코 1위 통신사업자인 텔멕스의 동영상 사이트로 브랜드가 남아있고 인터넷 식료품 상점 ‘웹반(Webvan)’은 2001년 파산했지만 현재 아마존닷컴에 연결된 외부 사이트로 간간이 고객들을 맞고 있다.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전자제품 유통점 ‘서킷시티(Circuit City)’도 지난해 11월 파산 보호절차에 들어간 뒤 올해 들어 역사를 마감했고, SW 판매 체인점으로 시작된 ‘에그헤드(Egghead) 소프트웨어’도 2001년 파산한 뒤 아마존에서 브랜드를 인수, SW섹션으로 운영 중이다.
글로벌팀 globa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