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연구소의 과학기술 담당 매니저인 스파이크 나라얀은 제로백(차를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4초에 불과한 테슬라모터스의 전기자동차를 직접 타본 뒤 전기차용 배터리야말로 IBM의 차세대 캐시카우가 될 것을 직감했다.
테슬라가 올해 양산을 계획 중인 ‘로드스터’는 1회 충전으로 350㎞가량을 달리는 스포츠카로 ‘전기차업계의 포르쉐’로 불린다. 나라얀은 “휘발유가 아닌 다른 연료로 가는 포르쉐를 믿기 어려웠다”며 “엄청난 스피드에 머리가 뒤로 젖혀지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31일 AP는 청운에 부푼 녹색 배터리업계의 소식을 알렸다. 외신은 시장성을 의심받던 전기차 배터리업계가 정부 지원, 기업의 투자로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주 IBM의 실리콘밸리 연구소에서 ‘배터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이틀 간 콘퍼런스가 열렸다. 배터리업계의 연구 성과와 시장 잠재력이 있는 새로운 저장방법 등을 두고 활발한 논의가 오갔다.
IBM과 협력사들은 리튬에어(Lithium-Air)배터리 개발에 3년간 1억달러(약 125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IBM은 리튬에어배터리의 성능이 현재 휴대폰·노트북 등에서 주로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보다 10배 뛰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라얀 IBM 매니저는 “지금이야말로 배터리 연구에 전력투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IBM은 리튬에어배터리가 자동차 등 혁신제품에 본격적으로 쓰이면 차세대 수익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테슬라모터스는 최근 신차 양산에 필요한 자금으로 미국 에너지부(DOE)로부터 4억6500만달러를 대출받으며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다. 도요타도 일본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하이브리드 전기차 프리우스를 곧 미국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미 정부의 ‘중고차 보상정책(Cash for Clunkers)’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낡은 차를 폐기하고 연비가 좋은 차를 새로 구입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 정책으로 많은 이들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자동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전기차 배터리업계에 밝은 전망만 따라붙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 전문가 다니엘 스펄링은 “화석연료의 미래 가격을 알 수 없는 소비자들이 (일반 자동차보다 비싼) 에너지 효율 자동차에 지갑을 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버튼 리히터 스탠포드대 교수는 “닛산은 첫 전기차 리프(Leaf)가 가솔린 1갤런(약 3.785ℓ)으로 590㎞를 달릴 수 있다고 홍보하고, 셰보레의 볼트(Vold)는 1갤런당 370㎞를 주행한다고 발표했지만 그런 숫자는 전혀 의미가 없다”며 “실제 주행 시 성능이 그에 못 미쳐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IBM 콘퍼런스 연설자로 나선 테드 밀러 포드 연구원은 그럼에도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되면 전기차가 아이팟이나 배터리 성능이 좋은 노트북처럼 관련 업계를 뒤집는 제품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그는 “실제 가솔린 1갤런으로 161㎞를 달리는 차를 보는 일은 매우 기쁘다”며 “(시장 확산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전 세계가 배터리에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윤주기자 chay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