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 중지와 금강산 문제로 시작된 남북 충돌로 단절됐던 남북관계에 다시 청신호가 들어왔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로 구성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사절단이 들어와 일정을 연기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오랫동안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문제에 길을 열었으며, 급기야 금강산 회담에서 추석 이전에 남북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이 만나기로 합의를 했다. 북한은 조건 없이 오랫동안 이어지던 개성공단 제재를 해제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제안했다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북측의 제안으로 얻어진 새로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충돌 이후 현대아산의 현정은 회장의 방북으로 오랫동안 억류됐던 현대아산 직원이 돌아오고 북한에 억류됐던 연안호가 돌아왔다. 개성공단의 모든 제재는 풀렸고 정상화를 위한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현대아산의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지만 북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아직도 단호하다.
지난 며칠, 중국 옌볜을 방문해 한중IT포럼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올해에는 오랫동안 지속돼왔던 남·북·중 IT 관련 세미나와 포럼 등이 우리 정부의 불허로 모두 무산됐다. 당국 간의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민간의 만남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이견을 좁혀갈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민간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가 통일을 준비하는 일에서 민간은 모두 제외하고 직접 모든 일을 준비하며 홀로 남북의 통일을 준비하고 이루어 나가겠다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지난 2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이후 강경 일변도의 북한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며 “하지만 6자 회담, 핵 문제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어 근본적 변화가 아닌 전술적 변화일 것”이라고 밝혔다. 현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모임인 ‘국민통합포럼’ 주최 토론회에 참석, 모두 발언에서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의 각종 제한조치를 철회했지만, 근본적 변화 여부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한조치 철회로 북한이 특별하게 아주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지 않는다”며 “그동안 이뤄졌던 것을 푼 것이고,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남북관계가) 더 전향적으로 나갈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북한 변화가 남북관계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부터 남북은 그간의 비방과 원망을 털어버리고 신뢰를 구축해나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의 가슴을 열어놓고 힘겨루기가 아닌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그간의 약속을 지켜나가기 위한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작은 나눔을 시작으로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영국 소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인간의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허무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 명작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향한 경계와 불신으로 아직은 어떤 사업이나 협력도 할 수 없다. 민간 접촉이나 사업은 대부분 통제되고 있다. 남북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준비하며 이산가족이 만나야 하는데, 꼬일 대로 꼬인 남북 경협문제도 풀어야 하지만 현재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북한의 항복이라도 받아보려는 듯한 느낌이다. 하루아침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변화는 공동 노력으로 나눔과 작은 일들을 거쳐 조금씩 이뤄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충돌을 해결하는 일은 어느 한 편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민 손은 따듯하게 잡아주는 아량과 도량이 있어야 한다. 더 큰 압력과 압박만이 남북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오만과 편견으로 큰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란다.
고 정주영 회장의 ‘길이 없으면 찾고 못 찾으면 새로운 길을 내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지금 우리는 남북의 문을 여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 길은 남북이 함께 가는 민족평화 공동번영의 길이다. 이제는 남북의 힘 겨루기를 끝내고 조금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협과 협박, 압력이 아닌 나눔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남북평화 공동번영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 ikea21@paran.com